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 학교는 뒤숭숭하다. 외부로는 각종 무한경쟁과 법인화의 격랑이 몰려오는데, 직전총장은 감옥에 있고, 총장실엔 원로교수들이 농성 중이고, 총장은 우격다짐, 일방적으로 총장직선제 폐지를 강행하는 와중에 교수들은 성과연봉제 시행을 앞두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다. 어느 하나 웅비의 기상은커녕, 콩가루 집안의 콩 냄새만 자욱하다.
 
너나없이 학교를 걱정하는 용단과 누가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의 논쟁은 무성하지만, 정작 새 학기를 맞은 이 학교의 다른 구성원들은 어느 누구의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교수회의 선동성 이메일과 총장의 독선적인 침묵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각자의 외부적 성과에 내몰리고 있으며, 교직원은 교직원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어정쩡한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학기의 강의를 개시하는 일은 사실 교수에게도 가슴 설레는 일이어야 한다. 새로운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찬찬히 부르면서 상호간 인사와 소개로부터 시작하여, 학생들이 적지 않은 등록금과 황금보다 소중한 청춘의 시간과 열정을 지불하는 만큼 그것이 아깝지 않도록 적극적인 참여와 질문, 불평불만사항까지도 경청할 수 있는 의욕과 여유와 상호간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온갖 비이성적 현실이 판치더라도 부릅뜬 이성의 혜안으로 날카로운 비판과 반성,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전개와 합리적인 논의, 잘났던 못났던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받고 또 존중해야 할 21세기 민주사회에서 대학이 해야 할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느 새 학기와 다름없이 긴 휴가를 보내고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 모든 어수선함에 아무런 죄가 없다. 그 반대로 전적으로 총장과 교수회의 타협 없는 독선 탓이다. 교수 개인들도 이 뒤숭숭함의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짜증과 화도 나고, 또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의기소침해 지기도 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필자를 포함한 교수들의 탓이라는 얘기다. 학교는 총장의 것도, 교수회의 것도 아닌 교수, 학생, 교직원 모든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공동체다. 이를 각자의 전유물인양 여기는 것은 스스로 국립대임을 부정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총장직선제도, 그 폐지도 모두 구성원들의 자율이 아닌 억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들 똘똘 뭉쳐서 서로를 격려하고 애를 써도 쉽지 않은 판에 스스로 학내소요라니. 이런 교수들을 믿고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당신의 아들, 딸들을 부산대에 보내준 국민들, 학생들이 도대체 보이기는 하는가.
 
절대 선은 독점하는 순간 절대 악의 얼굴이 되는 법이다. 우리 모두가 여기 이렇게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캐물으며, 맨 처음 학기의 첫 마음을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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