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음흉하다”, “흑인들은 운동을 잘한다”와 같은 비하적 표현의 근저에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깔려있다. 생물학적 결정론이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능력이 유전적?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생학은 이런 생물학적 결정론의 중요한 논거가 되는 이론이다.
 
우생학의 기원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트텔레스는 질병에 걸린 사람, 하위계층을 열등하다고 보고 그들보다 우등한 이들을 위해 열등한 이들을 탄압해야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이 사상이 다윈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자연선택설’?‘멘델의 법칙’을 만나면서 우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다. 우생학은 특정 인종이나 질병이 없는 사람을 ‘우등한 인간’으로, 그 외 인종과 장애인 등은 열등한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런 우생학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열등한 인간을 탄압하고 말살시켜 우등한 인간만 남기면 인류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낳기도 한다. 정재훈(분자생물) 교수는 “피부색, 인종, 질병 등의 요소로 우월성을 따지는 것이 우생학인데, 유전학적으로 이런 요소는 우월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우생학은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사과학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생학의 과학적 논거들은 논파되었고 우생학은 ‘죽은 학문’이 됐다.
 
하지만 유사과학에 불과한 우생학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근대의 우생학이 낳은 가장 큰 비극은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다. 600만 명의 유태인과 집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상의 출발점이 우생학이었다. 나치는 유태인과 집시를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하고 열등인자의 확산을 막는다며 홀로코스트를 일으켰다. 1924년 제정된 미국의 이민제한법도 같은 맥락에서 생겨났다. 또한 미국에서는 유전자로 확산되는 병이 아님에도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거세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우생학의 피해자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웠던 것이 우생학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므로 통치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박진빈(경희대 사학) 교수는 “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우생학으로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역사가 보여주듯 경각심을 갖고 비판적으로 우생학을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 과학적으로는 박멸된 우생학이지만 여전히 사회 제도와 인식 속에 어두운 흔적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제14조를 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 즉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돼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기형, 장애를 가진 태아를 ‘열등’하다고 분류해 미리 없애는 것이다. 신동일(한경대 법학) 교수는 “모자보건법은 장애인을 ‘열등 인종’이라 생각하는 우생학적 사고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에 시행됐던 소록도 나병환자 격리 및 불임시술 역시 우생학적인 사고에 근거해 시행됐던 정책 중 하나다. 실제로 나병은 유전병이 아니다.
 
일상 속에도 우생학의 폐해가 여전히 남아있다. 2세를 위해 결혼정보업체에서 돈을 지불하고 능력 있는 배우자를 찾거나 IQ테스트에 연연하는 것이 그 예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 역시 마찬가지다. 주로 동남아,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인 혐오증은 우생학적 사고를 통해 증폭된다. 박진빈 교수는 “과거 우생학의 피해자였던 한국이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을 ‘열등’하다고 느끼며 우생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이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위배되는 우생학적인 인식과 정책은 여전히 존재한다. 신동일 교수는 “우생학은 헌법에 위배되는 위험한 생각”이라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우생학적 사고를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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