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의 일이다. 한 선배가 있었다. 그는 소위 발로 뛰는 기자였다. 현장에 제 몸을 던지는 스타일이었고, 그래서 르포를 참 잘 썼다. 대학 새내기에 수습기자였던 나에게 그는 참 멋있어 보였다. 5월의 어느 날, 회식을 마치고 그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탔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그는 자조하듯 내게 물었다. “, 근데 우리가 이렇게 X 빠지게 기사 써봐야 아무도 안 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그때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두어 달 후 그 선배는 <부대신문>을 그만뒀다. 몇 해가 지나고 나서 그가 모두 알만한 방송국의 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ABC협회의 유가부수 조작이 논란됐다. 몰랐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해 <조선일보>의 유가부수가 116만 부라니. 그걸 누가 믿겠나. 신문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사하는 것은 확실하고 시기가 언제냐의 문제다. 부수를 조작해 수백억 원 규모의 정부광고비를 받아 챙긴 것은, 이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몸부림의 일환이다.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절박한 건 진심이다. 그 절박함으로 변화를 시도하라는 조언도 들려온다. 디지털 퍼스트도 하고 데이터 저널리즘도 하고 혁신도 하고 개혁도 하란다. 이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통째로 관용어구다. 환경이 변했으니 변해야 산다. 그런데, 얼마나 변해야 하나?

세상이 변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정도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던 20101. 앞으로의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혹자는 사람들이 저 멋진 물건을 손에 들고,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읽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린 예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는 고작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시청자는 공개 23일 만에 1억 명을 훌쩍 넘겼다. 지난해 북미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은 어떨까. 발간 첫날 전자책, 오디오북을 합쳐 89만 부를 팔며 기대를 모았던 이 책은, 한 달 동안 330만 부가 판매됐다. 북미 판매 1위였다.

종이책을 읽던 사람은 전자책도 읽는다. 종이신문을 읽던 사람은 모바일 뉴스도 읽는다. 텍스트 기반 콘텐츠에 익숙한 사람들은, 도구가 바뀌어도 글을 읽는다. 때로는 유튜브를 보며 깔깔대고 넷플릭스 드라마에 몰입하지만 결국 텍스트로 돌아온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릇만 바꾸면 충분한 줄 안다. 스마트폰의 초창기를 기억한다. 그때 최고의 SNS는 단연 페이스북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제 페이스북은 고령화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 사이 20대는 사진 한 장의 감성을 찾아 인스타그램으로 떠났다. 전 세계 10대를 사로잡은 것은 몇십초 분량의 동영상으로 승부를 보는 틱톡이다. 혁신이 불러온 변화는 페이스북의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약속의 땅>은 아이패드로 읽어도 <약속의 땅>이다. <오징어 게임>이 될 수 없다.

<부대신문>을 떠난 그 선배를 다시 만나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때 나는 선배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그 답을 모른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되레 물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지.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의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느냐고. 어쩌면 문제는 종이가 아니라 신문이 아니었느냐고.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