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열리면 평소에 스쳐 지나가곤 하던 모든 풍경들이 새로워진다. 어떤 축제가 그러하지 않을까 싶지만 거리에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분출해내는 열기와 다양한 억양들로 인한 낯섦이 있다. 그리고 분연하게 어디로인가를 향해 가는 인파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라 들뜨고 그 속에 섞여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어쩌면 영화보다 먼저 그걸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와 영화 사이에 잠시 쉬거나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와 흘끔 눈이 마주치거나 근처에 앉는 것이 계기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게는 영화제 때나 있는 일이다. 나보다 더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언제나 곁에 있었다. 어릴 때 그들은 형제자매의 신분증을 갖고 가서 상영등급을 넘나들며 영화를 봤다. 어른이 되어서도 벼르던 영화를 보려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제 몫의 티켓을 어떻게든 손에 넣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들 중 한 사람을 따라갔을 것이다. 제일 처음 본 영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남포동 어느 극장에서 맞은 영사 사고를 기억한다. 영화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진기한 경험이었다. 영화관에 얽힌 어른들의 오래된 회고담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2021년이다. 필름상영은 드문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영화제는 작년에 축소개최를 선택했다. 올해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듯 상영작이 크게 늘어났고 해외에서 유명인사들도 찾아왔다. 그렇더라도 누군가 다가와서 곁에 있는 빈자리에 앉아도 되는지를 물어보거나 그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보는 것도 벌써 1년 남짓 되었다. 감기에 걸려도 좀체 쓰지 못했는데 나는 마스크에 이제 익숙해진 것 같다. 상영관에서도 지켜지는 거리두기로 옆자리는 비어 있다. 매진된 영화를 보러 가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밀폐 공간 특유의 뜨겁고도 갑갑한 공기가 흐르지는 않는다. 관람의 측면에선 더 쾌적한 환경이 되었다고 그나마 장점들 중 하나로 여겨야 될까. 영화제라는 잔치 분위기가 옅어졌다고 아쉬워해야 할까. 가끔은 둘 사이에서 주저하며 판단하기 어렵다. 밀집한 사람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가 오늘에 와서는 안전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더 이상 낭만적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이 계속되듯이 여전히 좋은 영화는 좋았다. 나는 그래서 영화제를 찾는 것일까. 올해 보았던 열 네 편의 한국 영화 중 으뜸은 박송열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였다. 박송열과 그의 영화에 대해 알지 못해도 영화에서 주인공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것쯤은 눈에 보인다. 품새와 발성이 훈련된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바로 영화의 연출자이겠고 영화는 그나 그의 주변인들이 겪은 일을 어느 정도 반영했을 거라는 추측도 어렵지 않다. 특별한 사건들을 대신해 영화를 가득 채운 것은 현실의 삶에서 마주치는 요소요소들이고, 그것들을 담담하게 펼쳐내는 데서 가능한 추측이다. 때로는 돈이 예의고 염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단하지만 결코 그에 함몰되지 않고 수수하게 삶을 꾸려가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지키는 존엄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진다. 코로나와 함께 일상도 삶도 달라졌지만 중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내년에도 그 사실을 확인하러 나는 또 영화제에 가게 될 것 같다

부산독립영화작가론 인디크리틱 김지연 편집위원
부산독립영화작가론 인디크리틱 김지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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