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은 제4차 전당대회를 열고 노태우 대표위원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그날 오후 6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의 방침에 따라 거리의 차량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전두한 정권을 위시한 제5공화국은 붕괴했다. 비록 6·29선언의 후광효과와 양김의 분열에 힘입은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뒤따르긴 하였으나, 이로써 한 시대가 저물었음에 의문을 표하는 자는 없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4·13호헌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가시적이었다. 그해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의 전말이 축소·조작되었다는 폭로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이를 계기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서로 화합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던 야당과 각종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학생운동 조직들이 국본의 깃발 아래 하나로 모였다. 거대하게 넘실거리는 변화의 파도가 기존의 질서를 쓸어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과 민주정의당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거나, 알고도 그 의미를 무시했다. 그들은 지금껏 그래왔듯 변화보다는 유지를 택했고, 박수를 치며 샴페인을 터트렸다. 그것이 최후의 파티였다.

그로부터 34년 하고 하루가 더 지난 오는 11일. 국민의 힘이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제1차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4~5선을 경험한 당대표 후보가 즐비한 가운데 85년생 ‘0선’ 이준석 후보의 약진은 단연 눈에 띈다. 그는 그동안 보수정치를 이끌어왔던 나경원, 주호영 후보와의 경쟁에서도 우세를 점하며 일종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덕분에 국민의 힘 전당대회는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는 중이다. 물론 높은 지지율과 관심만큼이나 이준석 후보를 경계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가 트럼프 식의 분열·혐오 정치를 하고 있다거나, 사실상 극우 포퓰리즘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준석 후보 그 자체가 아니다. 그의 놀라운 약진을 뒷받침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다. 4·7 재·보궐선거에서 무능과 위선으로 점철된 여권에게 참패를 안겨주었던 그 바람이 이준석 후보를 향해 불고 있는 것이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를 상대로 당신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구시대의 수호자들은 총칼을 앞세워서라도 이를 막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변화가 멈추거나 도리어 후퇴하는 듯한 순간도 존재했다. 그렇지만 끝내 승리한 것은 386이었다. 그들은 486, 586으로 호칭을 달리하며 새로운 시대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유지해왔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34년 전 변화를 가로막으려고 했던 보수정당의 전당대회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오는 장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물론 오는 11일 이준석 후보의 돌풍이 꺾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일각의 주장처럼 개혁에 대한 열망이 그것을 담아낼 그릇을 잘못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당신들의 시대는 곧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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