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5월, 광주에 갔었다. 등을 맞대고 있는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역은 같지만 다른 풍경이었다. 운정동 국가묘역의 높게 솟은 위령탑과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묘지들은 웅장했다. 그러나 엄숙함과 비장함이 그날의 뜨거움을 누르고 있었다. 발을 돌려 도착한 망월동 묘역에서는 최소한의 질서만을 유지한 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묘지 사이사이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확성기를 든 사람들은 전라도 말씨로, 경상도 말씨로 그리고 구수한 충정도 사투리로 저마다 찾아온 이의 이야기를 일행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망월동 묘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 날의 영혼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공간과 방식은 찾는 이에게 어떤 기억과 감정을 전달해주느냐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흘러 역사를 직접 증언해줄 당사자가 사라져간다면 기념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동안 우리 기념문화는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현충원을 똑 닮은 국립묘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시작해, 과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기념시설로 끝이 났다. 물론 오랜 시간 왜곡되었던 역사로 인해 국가에 의한 공인과 예우가 절실하고, 참혹한 진실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 뜻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유족들마저 사라진 그때에는 누가 묘지를 찾을 것인가? 마주하기 부담스러운 참혹한 역사는 누구에 의해 기억될 것인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각기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비석들로 이루어진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많은 사람이 찾는 공간이다. 공원 외곽에 위치한 낮은 비석들은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다.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비석은 높아지고 빽빽해진다. 강제로 수용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유대인들의 공포감을 건축적 장치를 통해 함께 느끼는 것이다. 또한 지하에는 역사적 사실을 교육하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사례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가진다. 먼저 광주처럼 획일적인 묘역을 조성하는 것 대신,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충분히 담은 추모 시설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에서와 같이 고문 도구를 체험하지 않아도, 건축적 장치나 효과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역사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역사교육과 추모 그리고 일상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를 위한 기념은 소멸하고 현재를 위한 기념은 기억의 정치에서 멈춘다. 이제는 가려진 아픈 역사를 되찾아야 했던 기억의 정치에서 한발 나아가, 역사에 미래의 가치를 부여하고 전승하는 기념문화로 향할 때이다. 많은 사람의 삶 가까이에서 역사가 살아 숨 쉴 기념의 미래를 기대한다.

이시창 (정치외교학 19)
이시창 (정치외교학 19)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