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를 수행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은 누구나 소총을 다뤘을 것이다. 소총에는 가늠자와 가늠쇠라는 장치가 있다. 목표물을 총구에 있는 가늠자 안에 넣고 눈앞의 가늠쇠를 움직여 목표와 정렬해야 정확한 사격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 장치가 야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늠쇠에는 흔히 ‘야광’이라는 물질이 칠해져 있다. 정확하게는 형광 혹은 인광 물질이다.

형광이나 인광 물질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야만 물질 안에 있는 전자들이 들뜨고 들뜬 전자가 다시 안정한 상태로 돌아가며 흡수한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한다. 하지만 소총에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 이렇게 에너지를 공급하기 어려운 곳에서 빛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군용 소총뿐만 아니다. 나침반이나 시계, 비상구 표지판 등이 있다. 그렇다면 형광을 얻기 위한 에너지는 어디서 얻을까.

인류는 여기에 방사능 물질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가늠쇠에는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이 형광물질과 함께 있는 것이다. 수소는 원소 중에 가장 간단한 원소지만 핵에 중성자가 두 개가 더 있는 삼중수소도 있다. 이 원자는 불안정하다. 결국 중성자 한 개가 양성자로 바뀌고 전자를 방사선으로 방출한다. 가늠쇠에 있는 형광 물질에는 삼중수소가 있다.

최근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며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까지 떠들썩하다. 언론은 죽음의 바다를 언급하며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 삼중수소가 있다.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에 쏟아진다니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동해와 대한해협을 끼고 있는,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다. 정성적으로 보면 분명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웃 나라에서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량적으로 보자. 문제의 발단은 정화되지 않는 11종의 방사성 핵종과 삼중수소가 결합한 삼중수다. 일본이 택한 방법은 ‘희석’이다. 125만 톤의 오염수를 400배로 희석시켜 5억 톤으로 묽게 만들어 방류 허용기준 이하인 리터당 1500베크렐로 낮추고 30년에 걸쳐 느린 속도로 방류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체 1,500베크렐은 얼마나 위험한 걸까. 앞서 언급한 소총의 가늠쇠나 시계에 있던 삼중수소는 수억 베크렐이다. 이런 물질은 섭취할 일이 없으니 먹거리와 비교해 보자. 콩은 칼륨이 풍부하다. 그런데 자연에 있는 칼륨의 극미량은 방사성 동위 원소인 칼륨-40이다. 칼륨-40은 삼중수소보다 방사능이 340배 많다. 커피도 콩의 한 종류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있는 칼륨-40을 1리터의 삼중수소로 환산하면 3만 베크렐을 훌쩍 넘어선다. 국제보건기구가 정한 삼중수소 음용수의 기준치는 리터당 1만 베크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방사성 물질이 있는 음료를 별 생각 없이 마시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아무 일이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는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많은 양이 많은 일을 하는 법이다. 커피뿐만 아니다. 방사성 물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한다.

물론 일본의 오염방제 방법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삼중수소를 무조건 방출하지 말라고 하는 주장은 대안 없는 억지일 수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삼중수를 극초저온으로 만들면 완벽한 정화가 가능하지만 천문학적 비용으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수거된 오염수를 계속 보관할 수도 없다. 가둔 오염수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인재로 인해 허용기준 이상으로 바다로 흘러가면 대책이 없다. 이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일본은 이웃 나라임에도 사전에 우리나라에게 외교적 양해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오염수 방출을 결정했다. 이번 일은 일본과 해묵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보다 외교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이 계획대로 정화하고 희석해 방류하는 모든 과정이 국제 기준에 맞게 실행되는지 들여다보고 요구할 것은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준비해야 한다. 더 이상 삼중수소로 국민을 흔들며 정부의 외교적 부족함을 메우려 하면 안 된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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