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 현대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말이다. 우리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연구처에서 주도한 교내 연구비 지급 관련 규정 개정과 관련하여 학내 게시판에서 작지 않은 소란이 있었다. 개정되는 규정이 학문 분야의 특성을 형평성에 맞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항의성 메시지와 의견 수렴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는 비판을 담은 단과대학 성명서들이 게시되었고, 연구처에서는 나름대로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의견 수렴과정도 절차에 맞게 진행했다고 항변했다. 거기에 교수회에서 연구처장의 업무 처리 방식과 태도에 대한 비난성 게시물을 올리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아직 소란이 끝나지 않았기에 이 사안에 대한 논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일련의 사태는 현재 우리 대학 내 소통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소통’의 의미를 메시지의 전달로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의도와 생각을 최대한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소통’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상대방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다른 의견을 개진하면, 소통의 과정은 ‘썰전’, 즉 말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뒤돌아서면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소통하려 했어’하며 스스로 자위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경험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시 돋친 말들이 무성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소통’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소통’으로 번역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은 ‘공유하다’,‘나누다’,‘참여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ommunicare’이다. 이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community’의 어원이기도 하며 서로 왕래하며 함께 살아가는 집단을 뜻한다. 이런 어원을 고려할 때, 소통이란 이익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소통은 상대방을 향한 일방적 의견 표명이 아니라,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하는 공동의 작업이며,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는 일종의 춤이다. 아무리 뛰어난 춤꾼이라도 파트너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리드는 춤 전체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처럼, 상대방의 생각을 잘 들어보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에만 집중하는 것은 소통 과정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다. 그리고 잦은 소통 실패는 관계의 단절과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와 실물 경제 위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입학 자원의 감소는 대학의 존립을 어렵게 하는 난제들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학 교육 및 연구의 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학의 미래는 없다. 우리가 대학을 학문공동체라 부르는 것은 대학 구성원들이 소통을 통해 우리 대학의 운영과 미래를 함께 결정하는 주체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체로서 가지는 권리와 책임이 함께 있음을 뜻한다.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시 돋친 말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썰전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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