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신념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왜 필요할까? 삶은 불확실과 영원한 반복이라는 특성을 모두 가지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은 한 번뿐이며 매 순간 불확실하다. 인간에게는 오직 한 번의 삶이 주어지기에, 현재를 리허설 삼아 다음 생에 더 나아지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사람들은 나름의 신념을 이정표 삼아 이를 ‘최선’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동시에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의 반복이기도 하다. 니체의 ‘영원 회귀’ 에 따르면,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본성’ 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더 많은 ‘힘’ 을 원하면서 그 ‘힘’ 의 극대에 도달하기를 반복하며, 매 순간 자신의 ‘본성’ 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때 신념은 인생을 관통하는 ‘본성’ 으로 작용한다.

이토록 불확실한 삶 속에서, 책은 크게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대표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가벼움은 영원이라는 굴레에 갇힌 인생의 짐을 덜어내고 해방할 수 있는 가치다. 반면, 무거움은 삶에 무게 추를 달아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가치다. 사랑과 섹스는 별개의 것이라며 성적 자유를 추구하고 체제에 저항하는 토마시와, 영혼과 육체의 일치를 추구하는 테레사는 각각 가벼움과 무거움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립과 교차를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을 일으킨다. 가벼움을 좇아 살아가던 사람들은 무거움을 맞닥뜨리게 된다. 무한히 가벼운 삶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여성 편력이 심한 토마시는 테레사를 만나 그녀를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버린다. 그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혼하며 일종의 무거움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무거움을 지향하던 사람들도 가벼움을 조우한다. 영혼과 육체의 합일을 중요시하던 테레사는 영혼으로 부터 육체의 해방을 느끼며 자신도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고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두 인물은 이내 각자의 본성으로 회귀하게 된다. 토마시는 테레사와의 결혼 생활에도 다른 여자와의 정사를 멈추지 않았다. 테레사도 다른 남자와의 외도 이후 치욕을 느낀다. 이처럼 무거움과 가벼움이 교차하고 본성으로 회귀하는 과정은, 독자가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가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던 와중에 두 인물은 교통사고로 불시에 죽고 만다. 가벼움과 무거움, 그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독자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두 가치관에 대한 고민이 한순간 부질없는 사색으로 전락한 나머지 허무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주의는 동시에 두 가치관의 의미를 더욱 강렬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어떤 가치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차원을 넘어, 삶 그 자체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에서 보여주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바라보며 우리가 깨닫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행복에 대한 갈망이다. 삶의 중심이 가벼움이든 무거움이든, 그 바탕에는 반복적인 행복에 대한 갈증이 있다.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의지가 각 인물의 욕구와 신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한 두 인물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허망하게 끝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바라보며 오히려 허무주의로부터 발버둥 치게 된다. 이다지도 보잘것없는 끝을 목격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곱씹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 책을 덮고 나면 혼란 속에서도 삶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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