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문에 인색하다. 성장과 효율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저 질문은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질문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맞다. 학교에서는 외워야 했고 사회에 나가서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지나 보니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질문은 없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1심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연관된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과 폐질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업인들을 무죄로 판결했다. 피해자만 있고 누구도 책임이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복기해 보자. 사건 중심에 있는 물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하 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이하 PGH) 그리고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이하 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이하 MIT) 총 4종의 화학물질이다.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물질의 화학적 독성 자체가 아니다.

1994년 CMIT, MIT 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가 세상에 나왔다. 이 물질은 그 이전은 물론 지금도 각종 세정제에 들어 있는 성분이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 출시 당시에도 <유해물질 관리법>은 있었다. 그런데 이 법에는 1991년 이전부터 이미 사용돼 온 화학물질은 유해성 심사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28조 조항이 있었다. 결국 두 물질은 정부의 규제 조항의 빈틈을 타고 세상에 나왔다. 아무리 기존에 사용된 화학물질이라 해도 가습기라는 새로운 용도로 변경된 경우 독성 발현을 의심하고 안정성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1996년 PHMG가 등장한다. PHMG는 그 전에 없던 새로운 화학물질이었다. 당시 제조사는 신규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를 관련기관에 신청했다. 하지만 독성시험자료가 첨부되지 않고 통과됐다. 화학물질 신고서 등에 관한 고시 제9조에 ‘시험서 제출 생략’에 관한 항목에 해당된 것이다. PHMG는 고분자 물질이다. 생략 조건에 고분자 물질은 시험성적서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고 명시가 된 것이다. 대신 특성 실험 자료만 제출하면 됐다. PHMG를 통과했지만 소급조사를 할 수도 있었고 이후 등장한 PGH의 심사에는 분명 걸러졌어야 한다.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은 물에서 독성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규정 8조에는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은 추가 시험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는 선택 조항이 붙었다. ‘할 수 있다’라는 건 강제가 아닌 것이다. 기업은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2003년 결국 PGH도 선택조항을 이유로 흡입독성 자료가 제출되지 않고 세상에 나왔다.

참사를 막을 기회는 분명히 몇 차례나 있었다. 만약 한 사람의 실수라면 이해가 가지만 △환경부 △산업부 △식품의약품안정청 △기술표준원 등 화학 물질 심사와 관련한 유관기관도 많았다. 18년동안 수많은 눈이 있고 걸러낼 수 있었던 몇 차례 기회에서 왜 어느 누구 하나 가장 간단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이 물질은 안전한가’.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펜데믹에 놓여 있다. 상처 소독에만 사용하던 알코올이 일상에 들어왔다. 매일 장소를 옮길 때마다 손을 닦고 주변 공간을 닦아댄다. 소독제는 일상 필수품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몸으로 소독제가 분무된다. 마치 공항에 설치된 금속탐지기처럼 출입구에 설치된 게이트 양쪽으로 안개처럼 뿌려지는 살균제를 통과해야만 그 너머에 있는 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늘어가고 있다. 분무형 소독제로 사용되는 물질은 알코올이 아니다. 이런 소독제 중 가장 많은 성분이 ‘차아염소산’이나 ‘염화벤잘코늄’이라는 4가 암모늄 계열 물질이다. 둘 다 흡입독성이 존재할 수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어, 이거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시나리오 아닌가?’, ‘이렇게 뿌려도 안전한 걸까?’ 당연히 이 질문을 꺼내야 한다. 우리의 기억에 흐릿해져 가는 사건 조각을 다시 꺼내 조립하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과 맞춰봐야 하는 퍼즐인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확인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과거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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