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마크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에서의 성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학문의 자유 옹호와 학문적 진실성 훼손이라는 두 개의 관점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재작년 한국에서도 <반일종족주의>를 두고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해외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새삼 다른 느낌이 없지 않다.

어떤 이들은 해당 논문에 대한 철회 요구가 학문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학술적 토론의 기회를 봉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세계의 석학과 활동가들이 문제의 논문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까닭은 학술적 견해나 관점을 달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램지어 교수의 논문 자체가 학문적 진실성(Academic Integrity)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학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과는 달리 해당 논문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비평과 반론이 나오고 있고, 이 과정에서 논문은 혹독한 검증을 거치고 있다. 램지어 교수로서는 이런 과정이 몹시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 논문에 대한 검증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절차다.

‘논문 철회 촉구’는 수많은 학자가 검증 끝에 내린 결론이고, 이는 해당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될 정도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단의 발로다. 그런데 이 같은 검증에 대한 반론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채로 ‘이것은 학문의 자유’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논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의견 표명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할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는 램지어 교수 개인이 누려야 할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고, 나아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논문 철회를 촉구하는 학자들의 행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렵다고 평가될 만큼 비이성ㆍ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학자들의 비판은 학술지와 저널에 기고한 글로써 전반적으로 품위 있게 진행되고 있다.

진실한 사실과 확실한 증거에 기반을 둔 반론이 준비돼있다면 이 논쟁은 무척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의 시발점이 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학문적 진실성에 반한다는 광범위한 비판과 도전을 받고 있다. 과연 이 문제의 논문을 토대로 유의미한 재반론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철회되기를 희망한다. 이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된다면 학문의 자유를 남용한 사례로 남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선례가 장래에 미칠 해악을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미네소타대학교 로스쿨의 리처드 페인터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가짜 학문은 가짜 뉴스처럼 법치에 대한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이동규(정치외교학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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