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뽕>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나도향 작가의 생일입니다. 1920년대를 풍미했던 나도향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나도향 작가의 본명은 ‘경손’으로 경사스러운 손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이 이름을 그는 가부장적인 뜻이 담겼다며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벼꽃 향기라는 뜻의 ‘도향’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 사용했습니다. 나도향 작가는 1902년 서울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한의사인 할아버지의 권유로 가업을 잇고자 경선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문학에 뜻을 두어 끝내 의전을 중퇴했습니다. 그 후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기 위해 가족 몰래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갔으나, 할아버지의 반대와 학비 부족으로 인해 도중에 귀국해야만 했습니다. 

나도향의 본격적인 작가 생활은 1921년 〈배재학보〉에 〈출향〉을 기고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그는 1922년 문예동인지 〈백조〉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나도향 작가는 △<젊은이의 시절>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장편 <환희> 등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초기의 작품들은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가 짙었습니다.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쳐, 객관화된 ‘나’로 형상화되지 못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는 일종의 습작기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상에서 벗어나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자식>을 〈개벽〉에, <여이발사>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낭만 소설을 쓰던 나도향이 사실주의 작가로 돌아선 건 1924년 소설 <자기를 찾기 전>을 쓰면서부터입니다.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었습니다. 본능과 물질에 대한 탐욕 앞에 갈등하는 인간 모습을 <물레방아>와 <뽕>으로, 일제 강박 아래 신음하는 한국인의 참상을 <벙어리 삼룡이>로 그려냈습니다.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던 나도향 작가는 <환희>의 연재가 끝나자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의 조부는 끝내 손자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도향 작가는 1925년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지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동경에서 걸린 감기가 악화돼 폐결핵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병이 깊어져 귀국한 그는 병석에서 앓다가 1926년 여름 끝내 사망했습니다. 

25살의 나이로 요절한 그의 죽음은 한국 문학계에 큰 절망을 안겼습니다. 1927년 〈현대평론〉  8월호에는 나도향의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글이 특집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염상섭을 비롯해 △이태준 △김동환 △이은상 등 유명한 문인들이 그의 작품, 추억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실었습니다. 소설가 박종화는 ‘아, 박행한 천재여’라며 그의 요절을 애통해했습니다. 3월 30일, 나도향 작가의 생일을 맞아 그의 작품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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