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록경 | 2020)
         <잔칫날>
 (감독 김록경 | 2020)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타인과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울고 싶지만 웃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마주한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장례식이지만 잔칫날에 가야 하는 주인공 경만과 경미를 통해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명 MC 경만과 아르바이트생 경미(소주연 분)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박경근 분)를 함께 간호하고 있다. 힘든 상황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죽으면서 상황은 바뀐다. 가난했던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에 슬퍼할 틈도 없다. 아버지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장례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식 날, 경미 몰래 팔순 잔치의 MC로 가게 된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잔칫날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돌연사하면서 경만은 경찰에 연행되고, 경미는 장례식장에 홀로 남아 경만의 몫까지 짊어진다. 이렇게 두 남매에게 위기가 닥치자 ‘가족’ 혹은 ‘지인’이라는 말로 뭉뚱그렸던 인간관계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남매에게 아버지는 공존과 기생의 양면성을 가진다. 남매가 아버지에게 달리 불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존 관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병원비와 빚의 부담을 안겼다는 점에서 기생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남매는 주변인의 무관심에 방치됐다. 경만의 사촌 형(강성호 분)은 경만의 아버지가 언제 입원했는지조차 몰랐으며, 생전에 큰집에서 빌려준 200만 원을 받으러 장례식장에 왔을 뿐이다. 고모들 또한 허례허식을 강조하며 남매를 나무라기만 했다. 경미가 생선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웃는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정하자, 고모들은 자신들의 오빠가 낚시를 좋아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왜 저런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쓰냐”면서 경미를 혼내기만 했다. 친척이지만 사실은 경만의 가족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절차를 운운하며 결제 요구를 재촉하는 장례 지도사들, 애도는커녕 도박판을 벌이는 경만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가 남매의 상황에 무심했다. 오히려 그들의 재촉은 남매에게 공포와 조바심을 자아낼 뿐이었다. 장례식장이 아닌 잔치 행사장도 다른 점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경만이 할머니의 손을 억지로 잡고 춤을 추는 바람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경만을 원망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절망’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모두가 남매에게 매몰찬 것은 아니었다. 지인 중에도 남매를 챙겨주며 진심을 주고받았던 관계도 있었다. 경만에게 따로 부조를 더 챙겨주며 마음을 대신한 친구(박건규 분)도 있었고, 경미에게 경만의 사정을 전해주며 지인 중 유일하게 화환을 보낸 경만의 선배(김기남 분)도 있었다. 같은 처지의 경만에게 사과와 위로를 전한 일식(정인기 분)도 ‘좋은 지인’이다. 화환을 보내 마지막으로 장례를 장식한, 경만의 이름 모를 팬들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주고받는 마음이 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아픔은 사람을 통해 치유되기도 한다. 경만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가 힘이 됐던 것처럼 소통과 공감의 힘으로 상황을 극복할 때가 있다. 가능하다면 우리가 소통을 통해 고통보다는 행복을 나눴으면 좋겠다. 힘든 상황에도 고난을 같이 극복할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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