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꽃핀 거리, 곳곳에서 예술을 산책하다

어디에서나 있는 길이 문화가 뛰노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예술 작품을 설치하거나, 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화거리를 조성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부산 중앙동을 안내하는 지도를 제작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든  ‘예술마실’의 사례가 그 예시다. 이처럼 길이 가진 무궁무진한 매력을 살펴보기 위해 <부대신문>이 직접 문화거리를 찾아가 그 매력을 알아봤다.

 

문화가 번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길’이 주목받고 있다. 길이 가진 다양한 특성 덕분에 매력적인 문화 공간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에 도시와 지역문화를 활성화 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리에 문화를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개방적인 문화공간 ‘길’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다

길이라는 공간이 문화예술의 터전이 되거나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요소가 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길이 가진 △개방성 △지역성 △확장성이 문화공간으로써 길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어, 문화의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접근하기 쉬운 장소다. 이에 길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경우, 전시관이나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손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현정(동아대 산업디자인학) 교수는 “문화 거리를 조성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거리의 특징은 개방성”이라며 “누구나 그 거리에 접근할 수 있고 거리의 요소들을 직접 활용할 수 있다”이라고 전했다. 또한 길에는 지역의 색채가 묻어난다. 일반 도로와 달리 거리는 사람들의 터전과 곧바로 맞닿아있는 탓에 지역의 역사와 주민의 생활 모습이 길 위에 그대로 묻어난다. 논문 <도시 재생 관점에서 문화의 거리 공간특성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특성 덕에 거리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이자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문화의 총체로 정의되기도 한다. 또한 길 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교류는 길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거리는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순환시켜 도시를 확장하는 것이다. 장영호(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교수는 “거리가 활성화되면 다양한 활동이 파생된다”라며 “거리 활성화 전략에서 사람들의 유입과 교류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문화 거리 조성이 유의미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거리의 특성을 활용해 새로운 거리 문화를 만들어낸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같은 사례들은 예술 작품을 설치하지 않아도 거리 자체가 지역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중구의 ‘예술마실’과 서울특별시 서촌의 ‘서촌유희’는 길의 개방성과 지역성이 드러나는 장소를 엮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예술마실’은 부산의 원도심인 중앙동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부산 중구의 거리를 즐길 수 있는 지도를 제작한 것이다. 네 개의 코스로 구성된 예술마실 산책길에는 작품을 설치하거나 공연을 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자 예술가의 입장에서 원도심을 주목하고, 각각의 테마를 중심으로 이미 존재하는 장소를 엮어 코스를 짰다. 이 길을 따라가면 부산 원도심의 분위기와 지역 주민의 생활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서촌의 ‘서촌유희’는 마을 전체를 호텔로 설계해 길의 특성을 관광 콘텐츠로 활용했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여기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동네 곳곳을 누비도록 안내한다. 체크인은 서점에서 시작하고 식사는 주위 식당에서, 편의 시설은 동네에 있는 카페와 약국 등을 이용하면 된다. 길을 따라 호텔을 구성한 덕에, 자연스럽게 서촌 곳곳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문화 거리 조성, 
원도심에 숨결을 불어넣다

이같은 문화 거리 조성은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원도심에 문화를 만들 필요에 대해 말했다. 원도심에 문화 거리를 조성해 도시를 정비하고, 지역 주민과 외부인들의 접근을 높인다는 것이다. 김동완(경남대 사회학) 교수는 “길은 공적 공간이기 때문에 원도심의 매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문화 거리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화 거리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기존의 공연장이나 전시관과 달리 길은 지역의 색채를 담고 있어 지역 예술가나 주민의 문화공간으로 적절하다는 것이다. 장영호  교수는 “문화예술 공급이 취약한 원도심 지역에 특색 있는 지역문화를 공급하면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지역 마케팅의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문화 거리의 재도약?
고유한 정체성 확보가 답!

하지만 섣부른 문화거리 조성은 △젠트리피케이션 △콘텐츠 부족 △경직된 개발과 같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거리 개발 이후 과도한 상업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적했다. 거리가 개발되면서 과도한 상업화나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밀려나고 거리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김동완 교수는 “문화거리가 잘 된 지역에서 흔히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라며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공적 공간을 확보해 높은 임대료를 견제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문화거리 조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거나 콘텐츠가 부족해 외면당하기도 한다. 기존의 문화거리는 단기적 사업에 그쳐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고양시는 △덕양구 화정동 △일산동구 장항동 △일산서구 덕이동을 문화의 거리로 지정했지만, 이후에는 사실상 방치됐다. 행사나 환경개선 사업이 한 차례 이뤄지는데 그치거나 전혀 진행된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지역의 개별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화거리 개발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화 개발 프로그램 △주민 참여교육 △도로나 건물 정비 △ 설치 등 필요한 요소가 다르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 그 기준이 경직적이라는 것이다. 문화도시재생연구소 박재완 소장은 “우리나라는 물리적 환경개선을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 개발이 주로 이뤄졌다”라며 “문화거리와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살리고 원주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소프트웨어적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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