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포문을 연 김중업 선생의 생일입니다. 오며가며 자주 봤을 우리 학교의 인문관은 김중업 선생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포문을 연 김중업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김중업 선생은 일본의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1947년에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조교수로 부임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한국대표로 참석한 베니스 국제예술회의에서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다고 합니다. 김중업 선생은 르 코르뷔지에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그를 설득했고, 회의가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두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6·25전쟁을 겪은 한반도를 재건해야 한다는 비슷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중업 선생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로 3년간 일한 후 김중업 선생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하고 르 코르뷔지에의 가르침을 한국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요. 그중 하나가 당시 부산대학교 본관 건물입니다. 오늘날 인문관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641호로 지정돼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인문관은 금정산 지형에 따른 곡선 형태와 넓은 유리창 배치를 통해 우리 학교의 전경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 건물은 장소적 맥락을 잘 활용해 주위 경관과의 조화로움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김중업 선생은 ‘고구려의 힘찬 선을 건축으로 재현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수없이 도전했다고 합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이러한 김중업 선생의 노력의 결실로 꼽히는 건물입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추천으로 대사관 설계를 맡게 된 김중업 선생은 현대 건축에 한국적인 미를 녹여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요. 김중업 선생은 전통가옥의 처마 곡선을 철근 콘크리트라는 현대 재료를 통해 성공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정인하(한양대 건축학) 교수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전통 건축의 예술성은 살리면서 목조 가옥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를 현대 건축 재료로 보완해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방과 전쟁을 연달아 겪은 우리나라는 근대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타난 김중업 선생은 전통 건축의 편견을 깨고, 한국 현대 건축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색다른 시도는 후대의 건축학도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우리 학교의 시작을 함께한 인문관, 그 앞에서 김중업 선생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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