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꽃핀 거리, 곳곳에서 예술을 산책하다

어디에서나 있는 길이 문화가 뛰노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예술 작품을 설치하거나, 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화거리를 조성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부산 중앙동을 안내하는 지도를 제작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든  ‘예술마실’의 사례가 그 예시다. 이처럼 길이 가진 무궁무진한 매력을 살펴보기 위해 <부대신문>이 직접 문화거리를 찾아가 그 매력을 알아봤다.

 

 

중앙역 5번 출구로 나와 비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마크커피’를 찾을 수 있다. 프렌차이즈의 깔끔한 느낌도, SNS에서 볼 법한 세련된 가게도 아니다. 단출한 규모와 달리 주렁주렁 달린 사진과 쪽지는 이곳을 거쳐 간 추억의 수를 가늠하게 한다. ‘때깔 좋은 산책길’의 일부인 이곳은 단골들의 손때가 묻은 티가 역력하다. 마크커피의 사장은 커피를 만드는 내내 손님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친구 사이를 보는 듯했다. 사장뿐만 아니라 손님들 간에도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서로의 대화에 익숙하게 참여하는 모습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커피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마크커피에서 나와 걷다보면 ‘좋은차’와 ‘라이프버거’를 발견할 수 있다. 좋은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마크커피와 비슷해 보였다. 빨간 줄무늬가 인상적인 라이프버거는 청년 세대가 선호하는 감성을 겨냥했다. 마크커피와 좋은차에서 느껴지는 정겨움과는 사뭇 다르다.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처럼 보이는 가게와 고즈넉한 구멍가게가 공존하는 오묘한 조화를 엿볼 수 있는 동네다.

예술마실의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다시 지하철 5번 출구를 따라 돌았다. 그곳에는 세규화방이, 바로 옆 건물의 2층에는 문우당서점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각종 포스터와 정보지가 붙어있어, 문우당서점이 동네 문화생활의 거점임을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험서로 가득한 동네 서점이지만, 창가에 자리한 독서공간에서 사람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근처에는 문우당서점뿐만 아니라 △책방 여행하다 △주책공사 △미묘북도 있다. 서점이 점차 자취를 감추는 시대지만, 이곳 ‘책과 함께 회복하는 산책길’에서는 여전히 책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길을 건너면 골목 틈새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양식당이 있다. 양배추 롤을 팔고 있는 ‘양배추식당’이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에서 큰 냄비에 양배추가 잔잔히 끓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양배추식당 박지영 사장은 “고즈넉한 매력이 좋아 중앙동에 가게를 차렸다”라며 중앙동을 닮아 정갈한 가게를 소개했다. 이곳은 예술마실을 탄생시킨 원도심 예술가의 단골 가게다. 하지만 이들의 보금자리는 양배추식당만이 아니다. 양배추식당에서 40계단을 찾아가다 보면 중앙동 예술가들의 전시관인 ‘스페이스 닻’이 있다. 원도심 예술가들의 생각과 작품을 구경할 수 있고, 예술가들끼리 영감을 공유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거리 곳곳에 예술가들의 창작소가 흩어진 듯 모여있어, 이들이 커피와 밥을 마시고 거리를 누비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40계단과 주책공사를 지나 40계단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소라계단과 부산의 명물 겐짱카레, 후지라멘도 보인다. 원도심을 구경하러 온 이방인으로서 길을 거닐다, 익숙한 가게를 발견하니 반갑게 느껴졌다. 

소라계단 위에는 ‘샘길’과 ‘곰돌이청과’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라계단 위는 동광동으로, 주로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의 느긋한 분위기가 골목에 녹아있는 듯했다. 이곳이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한 퇴근 산책길’인 이유는 어쩌면 노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나오는 여유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곰돌이청과에서 시작하는 샘길은 내내 오르막이지만 숨이 차지 않다. 담벼락과 작은 구멍가게들이 예뻐 이를 구경하다 보면 저절로 길의 끝까지 걷게 된다. 노란색 담벼락 위에 카메라와 필름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조선키네마옛터를 지나는 것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인 영화사다. 산보 중 마주친 역사적 공간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남성여자고등학교 교문에 도착하게 된다. 교문에 통과하면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도심의 오르막이 경관을 자아내는 순간이다.

남성초등학교와 정오사를 따라 내려오면 ‘영남살롱’이 있는 좁은 골목길이지만, 부산근대역사관을 기점으로 탁 트인 길이 펼쳐진다. 광복동과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시작된 것이다. 부산근대역사관을 들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중앙동과 동광동에서 볼 수 있었던 옛날이야기의 속편을 보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붐비는 시가지로 나오니 금세 피곤이 몰려와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이 떠오른다. 중앙동에서 국제시장으로 이어지는 ‘예술가들의 수렵채집활동을 위한 산책길’에 ‘남포수제비’가 들어가 있는 이유를 몸소 느끼며, 마실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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