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에서 만나는 진정한 ‘나’ 

현대사회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라는 존재를 인식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평가받는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평가되는 외적 기준에 메이다 보면 건강한 정신을 갖기가 어렵다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는 오래된 격언은 여전히 유용하다. 

분석심리의 창시자인 융(Jung)은 우울증은 개인의 자아의식이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와 지나치게 동일시돼 내적 인격이 도외시되거나 외면될 때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융은 우리가 ‘나’라고 말하는 자기, 즉 ‘Self’는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성격 전체의 중심이라고 봤다. 코로나로 인해 생긴 혼자 있는 시간이 되려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이중섭의 자화상을 통해 숨겨진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작품에서 표현되는지 알아보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언급할 때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을 이야기한다. 세 작가 그림의 소재와 표현양식은 다르나 한국인의 정서를 작품에 잘 반영한 화가다. 이중섭의 작품은 소를 소재로 향토적 색채를 반영하고 한국전쟁 이후 새나 닭을 소재로 분단의 아픔과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아픔을 표현했지만 그의 작품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것은 인물, 특히 아이들을 소재로 해서 표현한 가족과의 사랑이며, 이것이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중섭은 한국의 격동적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1916년에 태어나 식민 지배를 경험했고 해방 이후에는 첨예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기, 한국전쟁의 발발과 피난,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분류돼 쓸쓸하게 생을 마치기까지 그의 40년의  삶은 고단함 그 자체였다. 

연필로 그려진 이중섭의 마음

그림1〈자화상〉, 이중섭
그림1〈자화상〉, 이중섭

 

이중섭이 남긴 자화상은 단 한 점이다. <그림 1>은 1955년 대구에서 개최한 개인전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려는 노력이 좌절되면서 폭음과 거식증, 이상행동 등으로 주변에서 그가 미쳤다고 할 때 그려졌다. 이중섭의 자화상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즉석에서 거울을 놓고 그려 지인에게 건네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에는 다른 부분과 표현의 차이를 보이는 두 곳이 있다. 첫째, 눈에 초점이 없다. 정확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두 눈은 동공이 확장돼 있고 어느 곳에도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두 눈은 지남력의 상실과 무망감을 나타내며 감퇴된 정서표현, 무의욕증을 반영하는데 이것은 조현병의 음성 증상에서 나타나는 기능의 결손 및 상실의 특징이다. 

심리학에서 개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지남력이 있다. 지남력은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올바른 지남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식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 △주의력 등이 유지돼야 하며 일반적으로 사람과 장소, 시간의 인식능력으로 판별한다. 무망감은 희망이 없음을 말하며, 미래를 개선하는 방법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는 감정을 의미한다. 

두 번째 특징은 입술 사이의 강한 필압이다. 전체적으로 균일한 필압으로 대상을 그렸으나 입술 사이가 강한 압력에 의한 선으로 표현돼 있다. 그림을 해석하는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본다면 구강기적 욕구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인물화 검사에서 입의 강조는 구강적 욕구, 강한 의존 또는 애착 욕구, 미성숙이나 알코올 중독의 경향을 반영한다(Koppitz, E. 1984). 

정서적 욕구와 관련된 이중섭의 구강적 손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1952년 부인과 아이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문제로 부인의 고향인 일본으로 떠난 후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이로 인한 자학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성취욕구와 기대 등 양가적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했다. 그로 인해 느꼈을 긴장·불안·분노의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됐다. 그의 구강기적 손상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의 강한 선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을 놓고 봤을 때 이중섭은 당시 현실을 극복하기 어려운 예술가로서의 정체감의 위기와 가족과의 재회에 대한 낮은 가능성 등 심한 좌절을 경험하면서 심각한 수준의 지남력 상실과 무망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무의식 속 드러나는 상징

그림2 〈판잣집 화실〉, 이중섭
그림2 〈판잣집 화실〉, 이중섭

 

그의 혼란스런 내적 갈등은 <그림 2>에도 잘 반영됐다. 이 작품은 투시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반영한다. 투시화는 5세 이전 유아기에 나타나는 아동화의 특징으로, ‘어머니와의 애착에서 분화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대처방식’으로 나타나는 그림의 유형이다. 성인기에 투시화의 유형이 나타날 경우 정신적 퇴행을 가정해 볼 수 있다. 퇴행은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문제나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안전한 시간이나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어기제 중의 하나이다.

그림3〈시인 구장의 가족〉, 이중섭
그림3〈시인 구장의 가족〉, 이중섭

이 그림은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체적 구도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완전히 보호된 공간적 구도와 구강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자세, 그리고 유아기적 소망을 반영하는 노란색의 색채사용에서 그가 이미 퇴행적 과정을 겪고 있음을 반영하는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그의 퇴행적 태도는 <그림 3>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는데, 시인 구상은 이중섭을 대구로 오게 해 함께 생활했는데 이 시기에 이중섭이 구상 가족의 모습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이중섭은 그림을 구상에게 건네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구상가족의 동적 구성과 활기찬 느낌과는 달리 그 가족을 바라보는 자신의 표현은 매우 연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웃고 있는 표정과 달리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경직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불행한 처지에 낙심하는 이중섭의 정서가 잘 나타난다. 

융은 예술에는 무의식의 상징들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에 나타난 원형적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외부세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자아의식에 대한 과도한 확장으로 내면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그것과 소통하는 경험을 가진다고 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세상과 격리된 시간을 가지며 예전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이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자신이 잘 알 수 없다면 현실과 마주했던 예술가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용기 있게 마주하며 예술가들이 말하고 싶어했던 것을 찾아보자. 그리고 지금 나는 세상과 어떤 자세로 대면하려고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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