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인쇄 테크놀로지가 인간 언어의 숙명적 다양성에 수렴함으로써 상상된 공동체의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창조했으며, 그 기본형이 근대 민족이 등장할 무대를 마련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끌어낼 결론들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절대 왕정이 사람들을 통솔하던 힘을 잃음과 동시에 근대 사회가 시작되고 인쇄자본주의가 발전했다. 인쇄자본주의는 지역의 새로운 소식부터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까지 기록해냈다. 언어 공동체라는 공통된 범주 안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의견을 주고받고 그 안에서 끈끈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됐다. 상상된 공동체의 출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같은 공동체의 의견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언어 공동체를 철저하게 배척하기 시작했다. 배타성을 넘어 공격성까지 더해지자, 결국 1960년대 극단적 민족주의로 치달은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앞선 이야기는 종교와 절대 왕정이 쇠퇴한 직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차이점을 찾자면 그때에 비해 ‘언어’가 더 다양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의 ‘언어’는 단순히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을 말하는 건 아니다. 문자를 뛰어넘어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묶어내고,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느끼게 하는 것. 사람들 간의 새로운 소통이 가능하게끔 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요즘 세상의 ‘언어’다. 

같은 세대, 같은 직업, 같은 취미, 같은 공감대를 이유로 우리의 공동체는 점점 더 작게 세분화됐다. 한 명이 속한 공동체가 정확히 몇 개인지도 셀 수 없고, 공동체 간의 경계마저 모호한 것이 최근 우리의 모습이다. 상상의 공동체가 발생한 이유가 인쇄자본주의의 발전이라면, 이렇게 점점 더 작은 공동체로 나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당연하게도 인쇄자본주의 이상의 새로운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개발과 사회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생존이 아닌 자신만의 관심사를 가지는 여유를 얻었다. 이후 대중매체가 보편화되자 활발한 교류의 장이 곳곳에 마련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동일한 ‘언어’사용자를 만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해진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그랬듯, 다른 공동체에게 심각한 배타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들은 타인을 배척하는데도 망설임이 없다. 아주 오래전 극단적 민족주의에서 확산된 전쟁이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금의 싸움은 역사에 기록된 것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다. ‘민트초코’라는 취향을 두고서 웃자고 시작한 일에 이제는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더 많다. 치킨을 좋아하는 집단 내에서도, 후라이드와 양념으로 나뉘고, 그 안에서 또 순살과 뼈로 나뉘어 싸우곤 한다. 취향에서 시작해 지역, 학력,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 짓기 위한 싸움은 말하는 사람만 존재하고 듣는 사람은 사라진지 오래다. 

정말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 생각해서 모두가 해결할 의지를 잃은 걸까?그렇다고 평생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이미 공동체에 대한 배타성이 불러일으킨 싸움의 최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고 있다. 최악의 역사를 반복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통역가를 데려오지는 못하더라도 사전을 펼쳐두고 타인의 ‘언어’를 읽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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