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장학금을 폐지한 학교가 처음으로 한국에 등장한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여러 대학에서 성적장학금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대학들은 성적장학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성적장학금을 유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성적장학금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충돌하면서 대학들이 쉽사리 답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부대신문>이 성적장학금 폐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라지는 성적장학금
달라지는 대학교육
 

서울 소재 대학들이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있다. 작년 서울대학교는 성적장학금 지급 기준에 소득분위를 추가했고 △한양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는 성적장학금의 비율을 대폭 축소했다. 특히 고려대학교는 2016년 성적장학금을 없애고,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로 개편했다. 당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이를 반대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하지만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1년 뒤인 2017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성적장학금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7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성적장학금을 폐지한지 1년 만에 성적장학금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성적장학금 폐지의 물결은 대학 교육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자는 논의가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과거의 대학 교육이 소수를 위한 엘리트교육이었다면 이제는 대학 교육이 대중화됨에 따라 그 가치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김효은 연구원은 “그동안 대학 교육은 앞서가는 소수를 위한 선택과 집중의 방식으로 이뤄졌고 성적장학금은 그 방식의 정점”이라며 “성적장학금을 폐지하자는 논의는 대학 교육이 공공성을 강화하고 폐쇄적인 문화를 개선한다는 함의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공부잘하는 학생 
돈 한 푼 더 준다?

1990년대부터 성적장학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교수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성적을 기준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붕괴되고 소득격차가 커졌고 경제력으로 인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학금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공평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인 장학금을 성적이라는 획일적이고 단순한 기준에 따라 지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김원섭(고려대 사회학) 교수는 “성적장학금 제도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기에 장학금을 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시대적 제도”라며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교육받을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도 부합한다”라고 말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는 경제적 지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적장학금을 폐지한 서울대학교의 경우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장학금 대신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금전적 지원 대신 명예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장학복지과 관계자는 “작년 기존의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딘스 리스트’라는 총장 명의의 표창을 발급하고 있다”라며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는 만큼 앞으로 성적보다는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하는 장학금이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성적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해외대학도 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일부 대학들은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 없어야 한다는 이유로 성적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소득분위에 따른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변화의 흐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장학금을 통해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 학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동규(부경대 글로벌자율전공학부 17) 씨는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장학금은 현실적으로 대학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라며 “실제로 장학금을 받고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 학기 성적도 올랐다”라고 말했다.

성적장학금이 필요한 사람들

하지만 성적장학금 제도를 폐지하는 흐름에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장학금 지급의 목적을  소득재분배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지 복지 정책을 실현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송수민(시각디자인 20) 씨는 “소득분위에 따른 장학금은 이미 국가장학금 제도로 지급되고 있다”라며 “교내 장학금까지 소득분위에 따라 지급된다면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이중수혜의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성적장학금 폐지에 부정적인 의견이다. 성적장학금을 폐지하면 장학금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것이다. 손지윤(사회학 19) 씨는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열심히 공부해 성적장학금을 받는 것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장학금의 취지는 하나의 기준으로 결정될 만큼 간단하지 않음에도 소득분위를 지급기준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이 장학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라고 말했다. 장학금을 모두에게 줄 수는 없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서울대학교가 성적장학금을 폐지한다고 발표하자 학생들은 이에 반발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를 이끈 최대영(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 17) 씨는 “학교 측이 학생들의 의견 수렴과 별도의 논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성적장학금 폐지안을 발표했었다” 라며 “성적장학금을 사실상 폐지된 뒤 오히려 장학금 지급의 범위가 좁아져 1년이 지난 지금도 불만을 가지는 학생들이 많다 ”라고 말했다.   

 

더 나은 장학금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성적장학금을 위해서는 우선 장학금제도의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득분위와 성적 외에도 장학금 지급 기준을 다양하게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대학처럼 국내 대학도 장학금 지급 기준을 다양화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과정에 있어 수요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대학과는 다르게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해외대학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경우 성적과 소득분위 외에 △국적 △성별 △나이 △거주지 △육아여부와 같이 다양한 기준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학금 지급기준을 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다는 것도 국내 대학과의 차이점이다. 김효은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장학금이 지급하는 측의 지급 목적에 따라 일방적으로 설정됐다”라며 “장학금이 필요한 대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기존 장학금제도부터 내실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소득분위에 따른 장학금과 성적장학금 모두 기준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수민 씨는 “어떤 장학금이든 본질은 장학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장학금이 지급돼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새로운 장학금정책을 마련하기보다 기존 장학금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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