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된 한문고전

귀신들이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바로 고전과 인문, 그리고 한문이다. 나는 수년 전 학교의 과제공모에 지원하여 고전과 전통과학을 결합한 융합과목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몇몇 교수들과 수개월을 준비해 개설했지만, 최초 수강신청 학생은 5명, 그마저도 최종 수강을 확정한 학생은 2명으로 줄었고 끝내 폐강되고 말았다. 폐강 소식을 알려주는 조교의 목소리에는 미안한 마음이 묻어 있었다. 본인 탓도 아닌데 말이다. 이 과목은 이듬해에도 개설되지 못했고, 결국 이름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슬픈 일도 아니다. 예부터 고전으로 불리는 책의 저자는 늘 비주류였고 소수자였다. 하다못해 공자를 생각해 보라. 중국 사상사에서 교조적 지위를 가진 공자는 어느 시대에도 비판받았던 적이 없었다. 전무후무한 사람이다. (다만 현대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전통비판이란 명분 아래 ‘비공(批孔)’이라며 비판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있을 때 인문학자로 고전학자로 교육자로 정치가로 저술가로 불린 적이 있었던가? 과연 세상은 그를 인정했었을까?

 

공자의 치유전략, 불온(不慍)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논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의 말이다. 특히 식자연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일찍이 조조의 아들이었던 조비(曹丕)는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고 했다. 글을 아는 사람들은 서로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다. 세상은 공자를 알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조국인 노나라에서도 그랬다. 노나라 귀족들의 견제로 인해 그는 끝내 조국을 떠나 떠돌게 되었다. 무려 최측근 제자 70여 명을 거느린 채 열국을 다니면서 자신의 사상과 학술을 알리고 저들에게 수용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쉽게도 그의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 공자는 허탈했고 좌절했다. 군주들은 간혹 자신의 제자를 등용하려 했다. 이는 기쁜 일이었지만 속마음은 썩 편안하지 않았다. 간혹 시기심도 치밀곤 했다. 그러나 공자는 이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전략을 수립한다. ‘불온(不慍)’!서운해하지 않는 것.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 구절을 ‘군자’를 위한 정신적 전제로 읽곤 한다. 군자는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적 지식인이었다. 지식인은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을 갖추고 세상의 변화와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변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군자가 될 수도 있고 소인이 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군자적 지식인이 되기 위한 전제로 ‘인부지이불온’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인부지’의 상황에 대한 공자의 마음 치유로 읽고자 한다. 지식인에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내가 가진 능력과 비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간혹 모욕을 느낄 정도로 자존감이 추락하기도 한다. 본래 지식인은 현실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법, 그래서 혹자는 지식인의 얼굴을 창백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자는 그런 아픈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누구나 ‘노(怒)’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밖으로 성내기는커녕 안으로도 성난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것이 ‘불온’이다. 

그는 이 마음의 전략을 재차 제시한다.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논어) 내가 다른 사람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에 대해 굳이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환’은 단순한 걱정거리가 아니라 일종의 병증이다. 공자는 ‘인부지’를 아파하는 것이 이미 병적 증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치유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다. ‘지’와 ‘부지’는 사람에게 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저질러지는 범죄를 떠올려보라! 

 

치유텍스트로서의
한문고전의 발견

나는 고전이 지금 현실에도 적합(適合)할 때, 적용(適用)될 때, 적중(適中 혹은 的中)할 때 귀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곧 유계(幽界)에서 명계(明界)로, 전설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고전은 역사적으로 상대적이었다. 고전의 상대성은, 주어진 시공간에서의 역할에 따라 고전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이 고전으로부터 치유의 자산을 추출하는 것은, 불편하고 아픈 상황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댈 곳은 예전의 경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경험의 적전(積澱)이 바로 고전이다. 

오랫동안 고전의 위치에 있는 텍스트들은 그만큼 장구하고 지속적인 해결의 아이디어를 제공해 왔다. 묵자는 ‘성인(聖人)’이란 천하의 난리를 다스리는 것을 일삼는 사람으로서, 비유하자면 병을 고치는 의사와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처럼 천하가 어지러워진 원인을 찾아내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도덕적이든 실용적이든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문학적이든 그 범위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를 원용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전이란, 세상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텍스트로서, 비유하자면 사람의 병증을 치유하는 처방과 같다. 그래서 고전으로부터 지금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위로를 구할 자료를 끌어내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일이다.

이미 학문의 세계에 진입한 지 오래건만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하나 있다. “너는 왜 한문고전을 공부하니?” 사실 이는 오랜 외우(畏友)가 전화로 던진 물음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기자가 나에게 물었다. “인문학이 쇠퇴하는 시대에 한문학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요?” 두 개의 질문이 뒤섞이며 다시 예전의 침묵이 떠올랐다. 

나는 자본과 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마음을 다독이고 재설정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물질과학의 시대인 지금은, 과학의 질주를 성찰하고 자기 삶의 주제로서의 인간을 다시 비정(批定)하는 것이 한문고전을 공부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의 하나라고 본다. 그간 종교나 철학이 담당해왔던 영역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존중보다는 모독이, 인성에 대한 성찰보다는 물성에 집착하는 오만이, 공감과 공존을 모색하기보다는 독선과 독존을 위해 질주하는 것이 일상과 상식이 된 시대에, 한문고전은 치유의 텍스트로서 새롭게 발견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의 인문학이 가야 할 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을 넘어서 구체적 인간성에 착목하고, 그 마음을 소중하게 포용하는 데에서 학문의 생존이 결정될 것이다. 

 

                  김승룡 (한문학) 교수
                  김승룡 (한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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