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제범| 2019)
               <집 이야기>
        (감독  박제범| 2019)

 

살던 집의 계약이 끝나가 새로운 집을 찾기로 한 여자는 보금자리를 찾아다닌다. 누가 봐도 깔끔한 외관과 좋은 경관, 여자는 천천히 둘러보면서도 마음에 썩 들지 않는 눈치다. 사실 여자는 중개인과 함께 여러 집을 배회했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몇 번째 보는 집이냐는 중개인의 물음에 여자는 여섯, 일곱 번째라 답한다. 여자의 반응에 중개인은 말한다. “아무래도 아가씨가 찾는 집은 내가 찾아줄 수 있는 집이 아닌 것 같은데”. 보금자리를 찾아다니던 그 여자의 이름은 은서(이유영 분)다. 결국 새집을 찾지 못한 은서는 아버지가 홀로 살고 있는 고향 집에 잠시 머물게 된다. 은서와 아버지는 단둘이 고향 집에서 지내게 되고, 잠시 잊고 있었던 가족들의 흔적을 마주한다.

다시 찾아간 고향 집에서 아버지 진철(강신일 분)은 그 공간에 홀로 남아 열쇠공이라는 그의 직업과 함께 그 자리에서 낡아가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는 창문이 없는 이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열쇠 문들과 함께 점차 사라지는 일거리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가족들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고 그렇게 그는 가족들이 떠난 집에 홀로 남은 것이다. 은서는 창문 없는 그 집에서 항상 갇혀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방엔 빛 한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집의 잠긴 문들을 열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가족들을 향한 문은 열지 못한 영화 속 그의 삶은, 참 아이러니하게 비친다. 

은서가 아버지를 보는 시선은 그녀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은서는 어느 날 친구와 대사가 없는 영화를 보다 말을 해야 내용을 알지 않느냐며 답답해한다. 그런 은서에게 친구는 답한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어?” 친구의 답은 진철을 대변하는 듯하다. 친구에 대답에 “말을 해야 알지!”라며 은서는 반론한다. 은서는 말 없고 무뚝뚝한 아버지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떨어져 있던 부녀가 한 집에 다시 모여서일까. 집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떨어져 있던 그들 사이의 간극은 어느새 좁혀진다. 여전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답답함을 내비치는 은서지만 이내 아버지의 서툴렀던 표현을 차차 알게 된다. 은서는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완전히 그런 아버지를 포용한다. 은서는 아버지의 관에 구멍을 내 평생 창 없이 살아온 아버지를 위한 창을 그 대신 내준다. 아버지 스스로가 가족에게 내어주지 못했던 마음의 창을 은서가 대신 내어준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은서는 이제 아버지가 떠난 그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은서는 아버지마저 떠난 집에 또다시 홀로 남았지만, 그곳에서 다시금 가족의 온기를 느낀다. 이제 은서가 그 집에 남았다. 은서가 결국 선택한 곳은 고향 집이다. 여전히 남은 그 집을 선택한 은서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집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은서가 찾던 집은 그저 머물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의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을 원했던 것이다. 은서는 다시 가족의 추억이 담긴 집으로 돌아와 본래 자신의 가족이 위치했던 곳으로, 아버지가 있던 곳으로 회귀했다. 우리의 집이 있던 곳으로, 그곳으로. 

필자는 영화를 보며 필자의 아버지와 필자 사이의 관계를 떠올렸다. 표현에 서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답답해하는 딸.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영화는 은서와 진철의 이야기로 우리의 아버지와 딸들에게 서로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도 서툴렀고 나 역시도 서툴렀기에. 모두 서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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