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4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바로 쌍천 이영춘 의사의 생일입니다. 이영춘 의사는 열악한 농촌의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양호실과 양호교사 제도를 도입했고, 한국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해 많은 의학자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농민 건강에 한 획을 그은 이영춘 의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영춘 의사는 원래 교사를 꿈꿨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의학 수준으로 고치기 힘들었던 병인 늑막염에 걸립니다. 늑막염을 완치한 후,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에 진로를 바꿔 의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유망한 의학자로서 주목받던 그는 돈과 명예를 포기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해 구마모토 농장의 전속 의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농민의 육체와 정신을 보호하겠다는 이영춘 의사의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영춘 의사는 결핵에 취약했던 당시 어린이들을 돌보며 농촌의 전반적인 위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 보건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양호실과 양호교사를 도입하게 됩니다. 한편 이영춘 의사는 가난한 농가에 부담이 큰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했습니다. 그의 의료보험제도는 이후 시행된 국민건강보험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영춘 의사는 농장에서 직접 농민들을 치료하며 농촌위생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는 건강한 농촌의 문화발달 여부가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현실화한 것이 농촌위생연구소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농촌위생연구소는 재정적 위기를 겪습니다. 이영춘 의사는 평생을 일군 농촌위생연구소와 병원이 쇠퇴하자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천식으로 자택에서 별세합니다.

‘민족의 영원한 발전은 건강한 농촌에 있다’는 말은 이영춘 의사의 삶을 가장 잘 나타냅니다. 이영춘 의사는 일제 치하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던 농민들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열악한 농촌위생을 개선하고자 평생을 바친 진정한 농촌혁명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가오는 12월 4일, 이영춘 의사의 생일을 맞아 그를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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