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그 곳의 비밀 부산 땅이 멍들고 있다

바로 우리 옆에 있지만, 알 수 없는 곳이 있다. 미군 주둔기지는 바로 옆에 있 어도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어느 정도로 환경오염이 진행되는지 알 수 없 다. 그로 인해 미군 주둔 지역이 반환된 후에야 부지의 환경이 심각하게 오 염된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산의 미군 주둔 기지와 반환된 부지에 대해 알아보고, 미군주둔기지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알아봤다.

 

부산 지역의 미군 주둔 기지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왔지만 그만큼 은폐되는 일도 많았다. 이에 정작 국민들은 미군기지 내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불안함에 떨고 있다. 사실상 치외법권이나 다름없는 미군기지의 근본적 문제를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알아봤다. 

더럽히는 건 미군이
치우는 건 한국이?

부산의 미군기지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미군군수물자재활용유통사업소(이하 DRMO) 부지는 반환 이후에 △납 △구리 △아연 등의 중금속과 인체에 치명적인 다이옥신과 TPH(석유계통탄화수소)가 발견되면서 토양오염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55보급창 주변지역에서는 기준치의 3배가 넘는 납과 아연 등이 검출됐다. 

미군기지에서 지속적으로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으나 미군 측은 오염된 토양을 다시 정화시키는 것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고 있다. 주한 미군 지위 협정(이하 한미 SOFA) 제23조 5항은 ‘미군의 공무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해 미국만이 책임이 있는 경우 금액의 25%를 대한민국이, 75%를 미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은‘대한민국 정부가 미군 시설과 구역 사용을 보장하고, 그 사용과 관련하여 제3자의 청구권으로부터 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한다’는 제5조 제2항을 근거로 미군은 환경정화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환경 오염 정화사업을 시행한 지자체나 정부가 정화 비용을 청구하더라도 미군 기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비용 부담을 거부하는 것이다. 

토양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데에 ‘KISE’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KISE(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는 ‘인간 건강에 대한, 알려진, 임박한, 실질적인, 급박한 위험’이라는 뜻으로,   2001년 SOFA 협정 합의의사록 환경조항을 신설할 때 도입됐다. 뜻하는데 미군은 이 KISE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환경 정화를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KISE 기준이 추상적인 데다가 주둔 미군사령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토양환경보전법>에 근거한 측정 결과와 상관없이, ‘미군 병사들의 건강에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건강에도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2009년, 한미 양국은 KISE 기준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줄이고자  공동환경평가절차서(이하 JEAP)를 새로 적용했다. 이후 JEAP에 의한 ‘위해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 역시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 물질이 발견돼도 대부분 미군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위해성 평가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0년 반환된 부산 하야리아기지는 JEAP 도입 후 처음으로 위해성을 인정받은 부지다. 그러나 오염면적으로 인정된 부분이 전체의 0.26%에 불과했으며 추후 부산시가 미군 측정 기준보다 엄격한 <토양환경보전법>에 의해 히야리아기지를 다시 검사했을 때는 17.96%가 오염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미군은 해당 오염 지역에 대한 3억의 정화 비용 지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81억 원이 사용된 DRMO부지 정화사업 역시 국토교통부 예산으로 집행됐다. 부지 반환을 협의할 때 DRMO 부지의 토양오염 면적이 41m²에 불과해 정화 작업이 거의 필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입 꾹 다문 미군에
주민들 피해 사실조차 몰랐다

미군기지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미군 측이 정보를 공개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새벽, 부산항 미군기지에서 갑작스럽게 울린 사이렌으로 근처 주민들이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미군 측은 인근 주민들과  부산시에도 공식적인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2015년 당시. 죽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은 탄저균이 배송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미군기지 내 세균 실험실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을 때도 미군은 명확한 사실관계를 알리지 않았다. 이후 주기적으로 세균 실험실과 관련된 정황이 발견됐지만, 그때마다 미군은 구체적인 정보 공개 없이 부인하기 바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부산항을 통해 생화학 물질을 반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자세한 세균 실험 내용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DRMO 부지 역시 미군 주둔 시기에는 부지 내에서 어떤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지가 반환된 이후에야 다량의 다이옥신을 비롯한 심각한 토양오염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주변지역에서 높은 수준의 중금속이 검출된 55보급창의 경우 내부 부지의 환경조사를 통해 오염의 원인을 파악해야 하지만 부대 내 환경 조사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군 측은 한미 SOFA 조항에 근거해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한미 SOFA의 부속 규정인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 절차 부속서 A>에서 ‘환경조사 내용을 언론에 보도하거나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서는 환경분과위원회 양측 위원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해둔 것이다. 이와 같은 폐쇄적인 정보 공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민들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균실험실 폐쇄 주민투표 청구서명 부산대 수임인 모임장을 맡은 김명신(일어일문학 12) 씨는 “95%라는 높은 치사율을 가진 세균실험에 대해  아무런 정보 공개가 없었다”라며  “학교와 주거지가 밀집된 남구에서 시행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보호하는 
해결방안 필요해

전문가들은 현재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한미 SOFA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6일, ‘불평등한 한미SOFA개정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시민단체들은 미군기지의환경오염 정보를 상시적으로 공개하라고 요청했다. 수시 점검과 정보의 공유가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한미 간의 합의가 성사된다면 심각한 환경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고 발생 이후에는 한국 정부와 지자체에게 사고 현장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 

모호한 ‘KISE’조항을 삭제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명시하는 것도 해결방안 중 하나다. 대한민국은 환경오염자부담제도의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에 근거해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환경오염의 방지와 제거, 손해전보를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금전적으로 배상하게 하는 국내의 환경법령을 한미 SOFA에 적용하고 미군 측에 정당한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군 기지를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고 해결할 방안을 정부와 지자체가 고안해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 문제를 책임지는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세균 실험실 폐쇄 주민투표 요구에도 부산시는 ‘국가 사무라 지자체에서 주민투표로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미군의 눈치를 보느라 몇십 년 째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부산8부두 미군세균전부대 폐쇄 남구대책위원회 이정은 집행위원장은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설이 시민들 바로 가까이에 있음에도, 담당하는 부서조차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라며 “부산시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외교부도 이 문제의 중대성을 깨닫고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라고 책임 주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연계도 새로운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군 방위비 협상 부담으로 인해 미군 측에 환경오염 책임을 지우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의 협상력 부재를 보완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시민단체들이다. 실제로 2017년 녹색연합 등 한국 시민단체는 미국 정부에 직접 정보공개를 청구해 ‘용산미군기지 기름 유출사고 내역’을 받아내기도 했다. 부산 지역에서도 현재 100여 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균실험실 폐쇄와 정보공개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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