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예술인에게 닫힌 예술의 장

장애 예술인은 자립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의 제정으로 장애 예술인의 인식과 처우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장애 예술인이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책에 불과했다. 이에 <부대신문>이 장애 예술인 지원 현황과 부산의 장애 예술인 환경에 대해 짚어봤다.

 

지난 5월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됐지만, 아직 장애 예술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가장 필요한 부분이 빠진 반쪽자리 법안이라는 것이다. 이에 <부대신문>이 장애 예술인 지원책의 실효성을 알아보았다.

대부분의 장애 예술인은 비장애 예술인들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장애 예술인의 경우 생계유지를 위한 일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8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 예술인들은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장애 예술에 대한 장기적인 금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구족화가 김진주 작가는 “생계 유지와 작품 활동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라며 “비장애인 예술가들처럼 다른 노동을 병행해가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장애 예술인들의 목소리
듣지 못한 지원법
 

이에 지난 5월 20일,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됐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금전적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의 주요 내용은 △ 장애 예술인들의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 및 지원계획 수립 △ 창작 활동 지원 △ 작품 발표 기회 확대 △ 고용 지원 △ 문화시설 접근성 제고다. 금전적 지원과 관련된 내용은 장애 수당 등 기존 지원금과 성격이 겹친다는 이유로 빠진 것이다. 이에 장애 예술인들은 법률에 제시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보다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

또한 해당 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나, 그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은 “법률이 빈 껍질이 된 것은 장애 예술인 지원 기금 부분이 삭제됐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지급 주기와 규모가 공시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구체적이지 않은 법안으로 인해 장애 예술인을 위한 대책들의 장기적인 효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한국장애인전업미술가협회 김영빈 회장은 “장애인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법률이 있지만 일회성의 작품전 개최 혹은 약간의 재료비 지원과 같이 단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역시 창작지원금 등 재정적 지원에 대한 세부적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부산시는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2020년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선정돼 국비 4.4억 원을 확보했다. 이를 활용해 부산시는 장애 예술인 창작공간 ‘온그루’를 지난 6일 개소했다. 하지만 장애 예술인들이 가장 필요로하는 재정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지적에 부산시는 아직 장애 예술인을 위해 별도로 창작지원금을 제공할 정도로 재원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부산시청 문화예술과 명지정 문화복지팀장은 “현재는 장애·비장애 예술인 구분 없이 문화재단에서 심사를 통해 수혜자를 선정하는 사업만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가로막힌 장벽
관심이 모아져야 해결된다

관계자들은 정부의 관심 부족이 원인이라 입을 모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는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장애 예술인은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장애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2018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도 지적은 잇따랐다. 장애 예술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논란이 된 것이다. 방귀희 회장은 “장애 예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장애인 문화예술활동’이라고 한 것부터 문제”라며 “국회의원들도 장애 예술인을 진정한 예술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이런 결정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애 예술인에 대한 선입견이 짙은 대중의 인식도 장애 예술인들에겐 큰 장벽이다. 김진주 작가는 “장애 예술인으로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장애인으로 인식하는 편견”이라며 “주로 발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기술적 측면에 대한 선입견 어린 평가를 받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장애인 예술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대중들과 장애 예술인 작품들의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시 작품의 일정 비율을 장애인 예술 작품으로 전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빈 회장은 “우리나라의 작품 거래장들은 아직 장애 예술인의 작품들을 반기지 않는다”이라며 “장애 예술인들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자주 선보여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장애 예술인들의 작품이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애·비장애 예술인 전시회를 개최한 김재홍(동아대 산업디자인학) 교수는 “장애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판매를 돕는다면 장애 예술인들이 겪는 경제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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