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학업, 복수선택은 안 되나요?

대학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낯설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부모로, 학교에서는 학생이 되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하다. 수유시설 찾기는 늘 어렵고,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하지만 학교 주위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이에 <부대신문>이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이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학생과 부모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이들을 ‘부모학생’이라 부른다. 2015년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는 부모학생 281명(남87명, 여194명)을 대상으로 ‘학업-가정 양립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자녀양육 부담으로 인해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분의 3(75%, 210명)에 달했다.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학생에 대한 편견과 낮은 관심으로 인해 이들을 위한 제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대학에서 아이와 함께하기
우리 학교는?

우리 학교는 부모학생에 대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부모학생을 위한 편의시설로는 △가족기숙사 △자녀 건강보험 △수유실 △배우자 프로그램 △부모학생 네트워크 등이 있으나 우리 학교에는 수유실뿐이다. 이조차도 법학전문대학원 건물의 수유실 한 곳이 전부다. 또한 우리 학교의 학생 식당에는 유아용 식사 의자인 하이체어가 비치돼 있지 않다. 좌변기 옆에 아기 의자가 있는 교내 화장실은 전무하다. 여성인권연구소 김다경 연구소장은 “<공중화장실법> 제7조의 2항에 따라 공중화장실은 남성 및 여성 화장실에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해야 한다”라며 “법률에 따라 국가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하니 학내 구성원의 관심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편의시설이 부족해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오기 힘들지만,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의 경우 부모 모두 비취업 상태일 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안예은(서울시 22)씨는 “수업을 들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라며 “학내 어린이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의 경우 2017년 교내 직장어린이집을 개원했다. 교직원 및 학생들의 육아 부담 완화와 복지 향상을 위해 기존에 운영하던 부설 어린이집 위탁 보육시설과는 별도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직장어린이집 원생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교직원 자녀다. 우리 학교 직장어린이집 관계자는 “현재 대학원생 자녀 한 명이 다니고 있다”라며 “학부생 자녀가 직장어린이집에 다닌 적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부모학생들을 위한 학사 지원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법에 관련 내용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제23조 4항에 따르면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거나, 여학생이 임신 또는 출산하게 될 때 휴학을 원하면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휴학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부모학생이 학문적 성과를 유지하며 임신/육아의 추가적인 책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이다. 이 법에 따라, 현재 우리 학교의 부모학 생은 출산과 양육 휴학이 가능하다. <부산대학교 학칙> 제64조 3항에 따르면 임신의 경우 1년 이내, 8세 이하 아이를 육아할 경우 통산 3년 이내로 휴학이 가능하다. 작년에는 9명, 올해는 7명의 학부생이 출산·양육 휴학제도를 이용했다. 

한편 화학약품을 취급하는 전공 실험실 등에서는 임신 중인 대학원생에 대한 보호 및 안전에 대한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에게 유해한 위험업종근무를 금지하나, 학내 실험실은 고용의 관계가 아니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이진숙 (대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근로기준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관련 법규에는 모성보호규정들이 있어 임신과 출산기의 여성근로자들을 보호한다”라며 “그런데 학교 안의 연구근로자에게는 이런 규정들이 적용되지 못해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 학교의 부모학생에 대한 재정 지원이나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양육비지원 △부모수당 △출산지원펀드 뿐만 아니라 부모학생들을 위한 이러한 장학 제도도 따로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 인권센터의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 학교 인권센터 관계자는 “2018년에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임신 및 출산 제도적 지원에 대한 의견을 받고 이들을 위한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으나 학부생을 위한 부분은 논의된 바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학생과 관계자는 “부모학생을 위한 지원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학생들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 요청이 있다면 수용할 생각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갈 길 먼 
대학과 사회는

부모학생들에 대한 인프라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자, 대학가에서는 이들의 상황 개선에 힘쓰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에는 ‘풀 케어 시스템(Full Care System)’이 신설돼 있다. 대학원생의 출산, 육아 등 모성보호 지원을 강화하고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캠퍼스 내 수유 시설을 설치했다. 출산·육아로 인한 휴학 등 학사 지원 제도도 강화했다. 또한 2017년엔 대학원생들에게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하는 내용의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대학가의 상황은 우리 학교와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이유로, 현재 부모학생들을 위한 법에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전국 국·공립 대학에 △임신 △출산 △육아 휴학제도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권고가 국·공립 대학을 대상으로 이뤄진 만큼 일부 사립대학은 휴학제도를 운영하지 않았다. 대부분 학칙에 따라 자체 휴학 가능 기간 내에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2016년에는 여학생 임신 또는 출산 시 휴학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학생의 가정 양립과 지원 관련 내용들을 반영해 <고등교육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개정된 <고등교육법> 제23조 3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업·가정의 양립을 위해 학생을 지원해야한다. 하지만 이는 강제성이 없는 기본법이다. 

제대로 된 정책 마련을 위해 부모학생들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나, 현황 파악도 부족한 상황이다. 201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재학생 300명 이상의 전국 38개 사립 대학원의 대학원생 임신·출산·육아 휴학제도 운영 여부에 대해 직권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이후 다른 조사가 시행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엄마’ 학생들에 대한 현황 파악은 더욱 미진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평균 첫 출산연령과 대학원생의 연령에 관한 통계로 간접적인 추측만이 가능하다. 2019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성의 수는 총 140,475명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년 우리나라 여성의 첫 출산 평균연령은 31.9세인데, 이를 초과한 여성 대학원생의 수는 73,469명으로 전체 비율의 약 50%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렇듯 대학원생이 어린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일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만, 사회는 이들에 대한 학칙이나 제도적 지원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대학

아직까지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학생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이진숙(대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모의 이념상은 개인이 학령기를 거쳐 성인이 된 후”라며 “그래서 성인기가 되지 않았거나 부양능력이 없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부모가 되는 것을 암묵적으로 부정하고 바람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대학 입학에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아이가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편견과 낮은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정책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부모학생이 느끼는 가정의 행복과 학업적 성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듯,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이들을 위한 지원이 확대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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