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여름 햇살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여느 때보다 높이 뜬 햇살이 경쟁이라도 하듯 오래된 가옥을 내리쬐었다. 집 내부를 단장 한지 오래되지 않은 집에 우두커니 서서 나에게 온 우편을 확인했다.
  울룰루에게서 엽서가 왔다. to.지안 으로 시작하는 작은 종이 위에 다부진 글씨가 빼곡이 채 워져 있었다. 그녀가 떠난지 1년 만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해 잘 지내고 있다는 말로 일상들을 나열한 글을 읽고 있자니, 그녀가 다녀간 여름의 향이 스치는 듯 했다.

  비가 그치지 않는 여름이었다. 오랜 장맛비로 흐린 하늘은 갤 여지가 보이지 않았고, 세찬 물소리만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비를 좋아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정든 공간에 거친 빗소리가 스며들 때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는 티브이를 켜 놓거나, 가사도 들리지 않는 노래소리로 텅 빈 공간을 채워야 했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그런 소리들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비가 만들어주는 특유의 차분함을 느끼며, 집안에 찾아드는 소리를 반겼다.
  시원하게 쏟아붓는 밖과 달리 집 안에서는 유난히 고요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손 때가 타 거뭇거뭇한 주전자에 물을 넣어 끓이고, 평소에 찾지 않던 찻잔을 꺼내 들었다. 물이 끓을 동안 커피 내릴 준비를 해야지. 구석에 먼지 쌓인 도구들을 하나씩 준비하는 내내 주말을 맞아 쉬고 있던 먼지들이 머릿속에서 날아오르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 고요한 무게를 지켜 보는 일이 좋았다.
  따뜻한 커피 때문인지,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것을 직감이라도 한 것인지, 그날 저녁은 유독 공기가 낯설었다. 바람이 창문을 거칠게 열려고 하는 사이, 현관 벨이 울렸다.
  “나야-.”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다부진 체격의 또래 남자아이, 강우였다. 머리를 다듬었는지 전보다 훨씬 짧아진 머리가 비죽하게 솟아 있었다. 이웃집에 사는 나를 챙긴답시고 먹을거리며, 책이며 챙겨주던 친구였지만 늦은 저녁에 우리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썩 자연스럽지 못했다. 안부를 물으며 문을 열어주려던 찰나, 인터폰에 작은 체구의 여자가 비쳤다.
  “저...사정이 생겨서 부탁을 좀 해도 될까..?”
  쉽게 부탁을 하지 않는 친군데, 강우가 말을 꺼냈다. 자주 신세 졌던 사람을 밖에 두고 대화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현관문을 열어주자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는지, 온통 젖어버린 여자와 강우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서 수건을 꺼내 두 사람에게 건내었다. 젖은 옷 때문인지 눈을 찡그리며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 앉은 강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내 사촌 누나 유미야, 우리보단 세 살 위. 잠시 있을 곳이 필요한데. 혹시나 너한테 부탁할 수 있을까 해서. 며칠만 신세져도 괜찮을까?”
  답지 않게 목소리를 떠는 강우를 보니 스스로도 어려운 부탁임을 아는 듯했다. 사촌 누나라 소개된 여자는 긴 갈색 머리에 자기 몸집보다 큰 검은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요는 그랬다. 호주에서 지내다 사정이 있어 잠시 한국에 들어왔는데 머물 곳이 없다고, 방을 빌려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여자는 강우가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 하고 인사를 하더니 이내 서툴게 웃어 보였다. 조금은 심연에 잠긴 웃음이었다. 그 아릿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이 낡은 집은 하숙집이었다. 근처의 대학교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 들이 여행이나 일로 집을 구해야 할 때 머물렀기에 그런대로 북적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낯선이를 집에 들이고 대접을 하는 일은 할머니가 있을 때야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가 익숙한 나에게 그런 여력은 없다.
  흔치 않은 부탁에 마음이 앞서 두 사람을 들였지만 막상 모르는 이를 집에 들이자니 걱정이 앞섰다. 상황상, 며칠은 함께 지내야 할 텐데 괜찮을까. 고민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강우가 다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요즘 분위기도 흉흉하잖아!누나랑 같이 지내면 여러모로 안전하지 않을까?숙박비도 내고, 나도 많이 신경쓸게. 정말 미안한데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한적한 동네에서 뉴스만 틀면 누가 실종됐네, 범인은 누구네, 컴컴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거기에 아픈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부탁하는 건 반칙이지. 물리기엔 이미 늦었다.
  강우는 여자의 작은 짐가방을 옮겨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레 생긴 하숙생 앞에서 무엇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번개가 집 안을 순간 밝혔다. 쾅. 번개가 무서웠는지 여자는 작은 신음을 내더니 이내 주저앉아 귀를 막았다. 한손은 귀를, 다른 한손은 어쩐지 목걸이를 잡았다. 번개를 무서워하는구나, 할머니랑 똑같네.
  번개 속에 순간 빛난 목걸이가 할머니의 것과 비슷하다 느낀 것은 착각이었을까. 금색 테를 두른 푸른빛의 나비모양. 분명 독특한 목걸이는 아니지만 흔하지도 않았다. 할머니도 늘 저렇게 번개가 칠 때면 한 손은 꼭 목걸이를 쥐고 계셨지. 늘 대담하던 할머니가 유난히 번개에 약하신게 의아했지만 그런 모습이 못내 안쓰러웠다.
  움츠린 여자를 보며 처음에 느꼈던 어색한 괴리감이 조금 옅어졌다. 할머니가 떠올라서 였을까. 밤새 번개가 치면 잠을 설칠테니 따뜻한 차를 준비해 주어야겠다.
  온기가 남아있는 주전자에 다시 물이 끓기 시작한다.

  페퍼민트는 할머니께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늘 찾으시던 차였다. 대부분의 그 날들은 날씨가 짓궂었다. 차를 마시고 싶으시다며 페퍼민트를 찾으실 때면 나는 방에서 나와 할머니 옆을 지켰다.
  어둠이 드리워진 부엌에서 천장의 가장 작은 조명에 의존해 주황빛 등이 주위를 밝히면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달그락, 하고 유리병 뚜껑이 열린다. 병에서 꺼낸 짙은 초록에 마침내 뜨거운 물이 스며드는 그 차례를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건 중학교 1학년의 늦은 봄이었다. 나는 애써 교복에 초등학생의 태를 구겨 넣은 학생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이혼절차를 밟으며 갈라서는데, 나를 맡기엔 두 분 모두 각자의 삶을 지키느라 여유가 없었다. 아직 어리니, 보육원에 맡겨지나 하고 있었는데, 소식을 들었는지 이웃 하숙집을 하는 할머니가 찾아왔다.
  청바지에 보폴이 일어난 갈색 가디건을 걸친 할머니는 내가 본 여느 사람들 중 가장 세련되어 보였다. 희끗한 곱슬머리를 반으로 묶은 할머니의 가디건 사이로 비치는 나비 목걸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당신은 그 낮은 목소리로 처음 본 나에게 지안아-하고 불러주시며 함께 살지 않겠냐 물으셨다.
  그때가 할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하숙 일은 삶에 매번 색다른 리듬을 얹었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 하는 건 새로운 일들을 가져왔고, 그런 일상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늘 생기를 띄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늘 새롭고 신비한 것 투성이었기에 학교에 가는 것보다 하숙집에 지내며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청소를 하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따뜻한 차를 건내며 그 삶에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특히 페퍼민트 차를 좋아했다. 꽃이나 허브를 마당에 가꾸는 것도 좋아해서 마당은 늘 할머니를 닮은 모습으로 있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후로는 그 반짝이던 시간들도 사라져 갔다. 하숙집 운영은 물론, 할머니의 물건들을 건드릴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이곳에 계속 남아있었다.

  페퍼민트 향이 짙어질수록 번개는 조금씩 밀려난다. 어느정도 뜨거움이 가라앉았을 때, 여자에게 조심스레 차를 건내었다. 여자가 아까와 같은 얼굴로 인사를 건낸다. 한국에는 지인이 아주 없는지, 무슨일로 온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티비 좋아해요?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요, 불편한 것도 괜찮구요.”
  어찌 되었든 지금은 손님이니 제대로 대접해야지. 한창 하숙을 치던 예전의 모습으로 말했다. 여자는 또 다시 끄덕, 옅은 미소를 띄었다. 남은 방을 여자에게 안내해 이불과 베개를 챙겨주고 나도 방으로 가 몸을 뉘었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낯선 이가 왔지만 어느 때보다 따뜻한 잠자리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아침 햇살이 무사히 먹구름을 삼켰다. 천둥소리의 빈자리를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대신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몸을 일으킨 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준비했다. 오늘도 별일 없기를 바라는 습관적인 절차이다.
  일어나 방에서 나오는데, 벨이 울렸다. 강우였다. 아차, 어제 강우가 손님을 데려왔지, 밤새 흘러간 구름 마냥 새로 들인 손님마저 잊을 뻔했다. 오랜만에 외부인을 들이고도 아무런 긴장감 없이 하루를 맞이했다는 것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양손 가득 반찬거리를 들고 강우가 민망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뇌물인지 뭔지.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며칠간 먹을 반찬들을 건네 주었다.
  강우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종종 들리고는 했다. 반찬거리를 챙겨준다거나, 집에 들러 짐을 옮겨주고 전구가 나가면 고쳐주었다. 관리하지 않아 음침해지는 집에 강우가 다녀가면 생기를 되찾았다.
  신경 써주는 오랜 친구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항상 따라다녔다. 강우는 늘 먼저 부르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살펴 봐주곤 했다. 언젠가 생각 없이 툭, 같이 살래?하고 던진 말에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던 것이 기억이 난다. 곧바로 너와 살다간 이 집처럼 큰일날 것 같단 핀잔이 되돌아왔지만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붉힌 강우를 보며 나 역시 당황했다.
  “어제는 정신 없었지?미안. 우리 때문에 잠설친건 아닌가..보네.”  
  과하게 피로가 풀려 탱탱하게 부은 내 얼굴을 봤는지 말을 하다 강우가 큭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괜히 민망해져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아직 자고 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피곤할 텐데 깨우지 않는게 좋을 거야. 어제 마음고생을 많이 했거든.”
하고 말하더니 강우는 능숙하게 국을 데우고, 들고 온 반찬들을 정갈히 담기 시작했다. 야무지게 아침을 준비하는 강우를 가만히 구경하자니 희미하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언제부터 이런 풍경이 익숙해졌을까 여느 친구와 다름없던 강우가 이리 자주 우리 집에 오게된건 오래전 일이다. 내가 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강우는 할머니를 찾아 이 집으로 왔다. 자연스레 나는 할머니와 강우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할머니를 뵈러 우리 집에 온다고 생각해 이제는 볼일이 없겠거니 싶었는데, 강우는 할머니가 떠나신 후에도 불시에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처음엔 옷차림이라던가 하는 민망한 부분에 또래 남자아이가 집에 방문한다는 것이 민망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졌다.
  여자와 며칠을 같은 집에서 지냈지만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잠시 거실에서 마주칠 때면 꾸벅하고 인사를 할 뿐이었다. 나는 밥이나 반찬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쓸 뿐 이외에 여자는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어느 날은 늦은 오후가 지나서야 여자는 일어났다. 요 며칠 조용히 지내더니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여자는 생각보다 당찬 면이 있었다. 강우가 가져온 반찬으로 저녁을 해치우더니, 동네를 구경할 수 있겠냐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길을 몰라서...”
  여자는 내가 같이 가 주길 바란다는 듯 말을 흐렸다. 해는 이미 들어가 버렸지만 산책가기 좋은 날이었다.
  “그럼 요 앞에 편의점이나 다녀올까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즐기진 않지만 그리 싫지 않았다. 원체 친구가 없는 탓에 또래 여자아이와 밖을 나서 보는 것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장마 탓에 집에만 있었기에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어두워지는 늦은 저녁, 녹색 대문을 넘으며 가이드를 자처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습한 밤공기가 목을 감쌌다. 듬성듬성 빛을 밝혀주는 가로등을 따라 동네를 걷다 보면 보이는 주택, 슈퍼, 피시방. 동네 구경이라고 하기엔 보잘 것 없지만 여자와 습한 거리를 천천히 걸어갔다. 실없는 얘기와 함께 20분거리의 편의점에 들렀다 돌아오는 손에는 맥주가 몇 캔 들어있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말을 꺼냈다.
  “실은 어제 이상한 꿈을 꿨어요. 할머니가 나오는 꿈이 였는데, 아, 저는 어렸을 때 할머니 품에서 컸어요. 꿈에서 할머니랑 같이 밥을 먹는데 마치 제가 아닌 듯 하면서도 현실감이 느껴 졌어요. 그 느낌이 너무 선명해서 눈을 떠서는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겪은 일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을 책에서 본적이 있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을 쯤 집에 도착했다.
  구옥 특유의 주황색 불빛 사이로 티브이 소리가 집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티비 조명만 켜둔 채, 비죽 열린 창으로 습한 공기가 느껴졌고, 낮은 테이블에 사온 맥주와 작은 간식거리들이 놓여있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오래된 선풍기가 달그락 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혹여나 그녀와의 술자리가 어색할까 염려해 멀쩡한 식탁을 두고 굳이 방바닥에 과자를 뜯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언제 그런 고민을 했냐는 듯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떼었다.
  “2년정도 호주에 다녀왔어요. 답답하더라고요 남들과 같은 집, 학교, 직장 이런 것 들이요. 학생은 이걸 해야 하네, 네 나이 정도면 회사에 들어가야지, 아직도 이걸 안 한거야?하는 당연한 질문들 말이에요. 틀을 깨고 싶었어요 어디론가 떠나고 싶더라고요.”
  일찍이 할머니 품에서 자란 그녀는 그게 불만이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바뀌지 않는 당신의 말들이. 답답한 마음에 모진 말을 뱉고는 집을 나섰다며 말을 이어갔다.
  “호주에 가보는게 꿈이었어요. 울룰루라고 알아요?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예요. 꽤 유명한데.” 
  그녀는 말을 이었다.
  “호주에서 매일 같이 그 바위에 올랐어요. 제가 그 바위산을 한결같이 좋아하니까 지인들이 저를 울룰루라는 애칭으로 부르더라니까요.”
  호주에서 지낸지 1년정도 지났을 때 한국에서 연락이 뜸해졌더랬다. 그러다 받은 편지 한통이 그녀의 일상을 깨버렸다. 일찍이 할머니 품에서 자란 그녀에게 간간히 연락을 주는 이는 할머니가 유일했다. 그때 눈치 챘어야 했다고 먼 곳을 보는 눈으로 말했다.
  “편지에는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짧게 쓰여있었어요.”
  그녀의 눈이 슬픔에 잠겼다.
  “호주에 있을 때 사람들을 많이 불렀어요. 한국 사람이다, 지인의 친구다 싶으면 누구든 어울렸거든요. 마음의 벽을 허물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해주는 방을 좋아했어요. 이곳처럼.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그 시간들이 좋아요.”
  그녀는 술기운이 오르자 얘기를 풀어놓더니 슬쩍 방 창문을 열었다. 독특한 창문 걸쇠가 낯설 법도 한데 제 집인냥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비 온 뒤 물 냄새 가득한 바람이 방안을 휘감는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하루는 눈치를 많이 본다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무슨 말을, 또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사람 들의 눈치를 보는데 그게 참 힘들다고요. 하지만 그 사람과 며칠 지내본 나는 알 수 있었어요. 그 사람은 배려가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배려가 자신을 숨 못쉬게 누르고 있던 거였어요. 사람들의 시선은 너무나도 우리를 주눅 들게 해요.”
  그녀의 말을 듣던 나는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내 학창시절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한 잦은 전학은 학창 시절을 도돌이표 속으로 빠지게 했다.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괜찮다는 어른들의 조언은 나를 수렁에서 건져주는 밧줄이 아니었다.
  수많은 처음 속에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떨쳐 내기 위해 튀지 않으려 눈치를 봐야 했고, 안정기 없는 변화는 늘 처음 겪는 감기 같았다. 언제까지 앓아야 나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을만 하면 다시금 앓기 시작하는 감기 속에 덩굴을 잡고 안간힘 쓰던 손에서는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시선들이 무서웠다.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잔인함으로 끝나는 친구들의 시선이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실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부드러운 햇빛 아래 할머니와 소녀가 나란히 햇볕을 쬐며 앉아있었다. ‘얼른 화단을 정리해서 예쁜 꽃들을 심자구나-’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당을 보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소녀에게 속삭였다. 아, 꿈이구나. 부드러운 목소리와 인자한 미소. 꽤나 젊어지신 감이 있지만 분명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파란 처마 밑에 쭈그리고 물끄러미 화단을 쳐다보던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일어섰다. 일곱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바람에 날리는 파란 원피스 자락을 손으로 잡고 풀밭으로 걸어 갔다.‘향이 좋은 꽃들로 가득 채울래요!달콤한 향기가 났으면 좋겠어요!’  
  밝았던 햇빛이 조금씩 둘을 비껴나가고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꿈의 장면이 멀리서 펼쳐지고 있다고 느꼈다. 머리를 길게 늘여 뜨려 햇살에 그 고운 머릿결이 반짝이던 그 소녀는 내가 아니었다. 할머니 옆의 소녀는 누구였을까.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의문이 메아리 쳤다.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초인종이 울린다. 요 근래 유독 찾아오는 이가 많다 느끼며 문으로 향하자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와 물었다.
  “누가 왔나봐요”
  “그런가 보네요”
  비몽사몽간에 입꼬리를 힘겹게 올리고 손님을 맞으러 가는 뒤를 그녀가 졸랑졸랑 따라왔다. 끼익-녹슨 초록색 대문이 뻐근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힘겹게 자기 몸의 반쯤 되는 수납장을 안고 있는 강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같이 나왔네?얼른 들어가자 무거워.”
  “이건 뭐야?”
  비틀거리는 강우의 손가락에서 하얀 봉지를 그녀가 낚아채듯 가져갔다.
  “허브?아 이거 페퍼민트구나..!전에도 이거 주지않았어?옛날에도 민트향이 좋아서 아꼈었는데.”
  감상에 젖은 그녀 옆에서 눈치라도 보는지 강우가 곁눈질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쿵-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휑한 방에 연한 흙색의 수납장이 들어왔다.
  “왠 수납장이야?”
  강우가 자주 들러 집을 살펴봐 주지만 이런 큰 물건을 들여놓은 적은 없었다. 무거웠는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소매로 슥 닦으며 강우가 대답했다.
  “저번 실습시간에 만들었어. 짐 둘 때 보니까 가구가 마땅한게 없어 보여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깔끔한 흰색 벽과 썩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듯 했다. 안 그래도 손님이 지내는 방이 휑하여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신경 쓰이던 차였다. 단조로워 보이는 생김새였지만 깔끔한 마감에 고풍스러운 손잡이가 어우러진 수납장이었다. 수납장에 머물던 시선은 이내 땀을 훔치고 있는 강우의 손으로 돌아갔다. 이것저것 만드느라 거칠어진 눈에 들어왔다.
  손재주가 뛰어나던 강우는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냈다. 자신의 손으로 집을 만들겠노라 말하며 작업에 몰두하던 강우는 결국 건축학도가 되었다. 올곧은 눈빛으로 자기가 할 일을 찾아 나가는 강우를 동경했지만, 아직 내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나를 마주할 때면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은 창문이 잘 닫히지 않았는데, 아직 여름이라 크게 문제될 건 없겠지만 생각난 김에 고쳐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꿈속의 소녀에 대한 의문이 풀린 건 그로부터 며칠 뒤, 고장 난 창문을 확인하러 그녀의 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4평 남짓한 방은 손님이 오면 빌려주던 공간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어 타지에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게 보듬어 주는 분이었다. 구석에는 초록색의 이불로 덮인 침대가 깔끔하게 놓여져 있고, 베란다로 통하는 커다란 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침대 맞은편 원목으로 된 책상에는 그녀의 책들과 필기구, 사진 같은 것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샛노란 불빛을 맞으며 그녀가 이곳에서 바라보았을 창밖의 풍경들을 생각했다.
  달칵. 달칵. 작은 방의 창문에 붙어 열심히 창틀을 맞춰보지만 쉽지 않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연신 눈을 찌푸려 보지만 눈이 멀 것만 같다. 모처럼 그녀가 볼일을 보러 나간 사이 창문을 고쳐야겠다고 일을 벌였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 괜시리 오기가 생긴다. 이게 뭐라고 이리 힘든지. 창문을 잡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어봐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한참을 씨름하 다 지친 몸을 이불 위에 던졌다.
  한창 할머니의 일을 도와드릴 시절 함께 자주 꺼내었던 이불이 오랜만에 포근했다. 포근한 이불에선 그때의 향기가 그대로 피어 나는듯 했다.
  내 방으로부터 고작 몇 발자국 거리에 위치한 방이었지만 하숙 일을 접은 후로는 눈길 한번 제대로 준 적 없었던 방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침대 맞은 편의 원목책상에 필기구와 몇 개의 책이 놓여있고 아직 짐을 잔뜩 머금고 있는 가방들이 방 구석에 고이 누워있었다.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는 방을 스윽 훑어보던 시선이 흙색 수납장에서 멈췄다.
  ‘가만 보면 참 대단 하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걸 뚝딱 만드는지 말이야.’드르륵.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수납장을 열었다. 그 속에는 사진이 들어있었다. 아차 싶어 서랍문을 닫으려는 찰나 웅장한 바위를 찍어놓은 사진에 시선을 빼앗겼다.
  간밤의 대화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수납장 안에는 울룰루 사진으로 가득했다. 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바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울룰루의 결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사진들에는 울룰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울룰루는 마치 하나의 능 같았다. 겉에 새겨진 결이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숨을 죽였다. 사진 속의 울룰루가 내 앞에 드리워지자 지대한 무늬가 내 손에 닿을 듯 간질거렸다. 그녀가 마주하고 있었을 풍경을 생각하며 그곳에 서 있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울룰루는 우뚝 솟아 신비한 인상을 주었다. 짙은 모래들이 곧 흘러내릴 것만 같지만 아주 견고하게 서 있어서, 그것은 정말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녀는 울룰루 앞에 서서 아무 말도,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웅장한 바위에 멍하니 삼켜졌을 때 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원피스를 입고 사진 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꽃에 정신을 빼앗긴 소녀와 이를 지켜보며 지긋이 바라보는 할머니가 있었다.

  비로소 모든게 이해되었다. 선명했던 꿈은 나를 끌어안고 있던 오래된 보금자리의 기억이었으리라. 그 장면들은 내 꿈속에서 현실이 되었다. 조심스레 사진을 내려놓고 서랍을 닫았다.
  생각이 많아져서는 거실로 나와 쇼파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과거의 잔상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오래되어 끊긴 장면들이 반복되며 재생되었다.
  공격적인 고성이 넘나들고 식기가 수차례 깨지는 집. 하루에도 수차례 언성이 끊기지 않는 집이 내 가장 깊숙한 시절을 감싸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은 이미 지나간 봄 햇살을 억지로 잡아보지만 거칠게 내팽겨 쳐져 잘게 금이 가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전까지는 꽤 괜찮은 가족이었을 테다.
  또래들의 비아냥, 놀림거리를 가방에 마구잡이로 쑤셔놓고 끝없는 계단을 오르듯 발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온 여느 때와 같은 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이제 남은 유일한 내 편을 힐끔 올려다 보지만, 이 집에 더 이상 소녀의 편은 없는 듯 했다. 상황은 진심을 비틀었다. 이른 나이에 세상에 던져진 소녀는 굳은 마음으로 눈물을 잠궜다. 그렇게 그 곳을 작별하는 마지막 날 할머니를 만났다.
  “적적했는데 말동무나 되어 주겠니?”
  희끗한 머리를 반묶음으로 말끔히 묶은 할머니의 부드러운 시선이 나를 감쌌다. 어머니의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니라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 끝없이 되뇌였다. 소녀는 담담히 새로운 인연을 따랐다.
  햇살 하숙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동네에서 꽤나 유명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반갑게 안부를 묻고 싹싹한 하숙생들은 친손자 손녀처럼 살갑게 집안을 채운다. 생기로 가득한 집은 소녀에게 너무나 어색한 풍경이다. 소녀는 작은 말소리에, 발소리에도 움찔했다. 소녀에게 하숙집은 생존을 투쟁해야 하는 곳이었다. 마치 쓸모를 증명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절박한 손은 방금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손가락을 쥐듯 빗자루를 꽈악 움켜 쥐었다.
  쨍그랑. 작은 손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던 접시가 조각났다. 소녀가 하숙집에 들어온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무슨 일이야. 누구 다쳤어?사람들이 모여든다. 아아. 들켜버렸다. 마지막 기회마저 조각나는구나. 소녀는 생각했다. 깨진 접시 조각들에 실망스런 어른들의 눈동자가 비치는듯 했다. 날카로운 조각들이 흩뿌려진 바닥에 주저앉아 운명을 체념하자 메달려 있던 눈물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눈물이 조각나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할머니가 소녀를 꼭 안아준다.
  “괜찮다. 괜찮아.”
  따뜻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편하게 있어도 된단다. 이제 여기가 네 집이란다.”
  할머니와 심성 좋은 하숙생들과의 생활속에 조금씩 내 마음을 열었다. 소녀의 눈가에 걸린 장난기가 그 변화를 감히 짐작하게 해주었다. 바닥을 쓸고, 함께 이불을 빨고, 차와 간식을 내 주며 하숙집의 일을 하고 있노라면 평안한 하루에 마음이 편해졌다. 너도 이 세상에 쓸모가 있다며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해 듣는 듯도 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후로는 그 반짝이던 시간들도 사라져갔다. 하숙집 명패는 상자에 고이 들어갔고. 할머니의 물건들을 건드릴 용기조차 없었다.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집에 남았다.
  짧은 필름이 모두 지나가자, 눈물이 났다. 그날 몽땅 쏟아냈었다 생각했던 묵혀놨던 감정들이 섞여 쏟아졌다. 힘겹게 끌어안아 곪은채 버텨왔던 것들이었다. 갑작스러웠던 하숙생의 정체는 할머니의 피붙이였을 것이다. 얼굴도 몰랐던 할머니의 혈육의 등장에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반가움이었다. 그리움에 도망쳐버린 나를 붙잡아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으로 그대로 쇼파에서 선잠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떠난 뒤였다. 그녀가 그날 할머니 산소를 다녀왔고, 인사를 하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는 소식은 나중에서야 강우의 입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방 책상 한켠에 노란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종이에는 간단한 고마움의 인사와 함께 주문 같은 말이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다를테니, 다음에 만날때는 더욱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 그늘이 지난 곳, 울룰루로부터.’
  ‘그늘이 지난 곳’생전 처음 알게 된 바위의 이름은 그녀와 퍽 어울렸다. 슬픈 마음으로 방문한 할머니의 집에서 찾은 낯선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누군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오히려 안도했을까. 그늘이 지난 뒤기에 그곳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어른스럽게 나를 달래는 언니의 모습에서 수많은 그늘을 뒤로한 웅장한 바위가 비쳤다. 단단하고 듬직한 바위는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쪽지 덕분인지 갑작스런 이별에 야속한 마음이 조금 옅어졌다.
  나는 그 따스함을 기억한다. 그녀가 다녀간 뒤 오롯이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미래에는 지금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는 말은 어떤 다짐처럼 나를 움직였다. 환영처럼 스쳐 지나간 날들의 중심에는 늘 울룰루가 있었다. 그 짧은 여름의 찬란함을 울룰루에게 말할 수 있다.
  그 날들은 아스라하게 빛난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다를테니, 다음에 만날때는 더욱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는 이병률시인의‘ 이 넉넉한 쓸쓸함’에 나오는 말을 변형하여 차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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