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학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립문학관을 설립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은 첫 단추조차 채우지 못한 상황이다. 부산 문학인들과 학계의 꾸준한 요구에도 부산시가 관련 정책을 펼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부산 공립문학관의 추진이 더딘 이유와 앞으로 필요한 방향성을 살펴본다.

 

문학진흥 하라는데…
부산만 없는 공립문학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별 공립문학관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문학관이 문학 자료의 보존이나 전시뿐 아니라 침체돼있는 문학계의 부흥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원(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는 “문학관이란 과거 문학의 역사성과 현재 문학계의 현재성이 교차하는 공간”이라며 “시민과 연구자들이 자료를 향유하고 문학적 활동을 재생산하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곳”이라고 문학관의 의의를 설명했다. 또한 지역에 기반한 문학관을 건립해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고 문학 문화를 활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박태일(경남대 한국어문학) 교수는 “지역 문학관은 단순한 전시공간이나 관광 상품이 아니다”라며 “지역 문학의 가치를 전승하고 지역성을 창출해내는 바람직한 구심점이 된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정부는 지난 2016년 <문학진흥법>을 시행했다. 주요 골자는 문학 창작·향유에 관한 지원을 통해 문학 문화의 진흥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법은 제19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사회의 문학 진흥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기준에 따라 공립문학관을 설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해 지역 공립문학관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만들기도 했다. 이에 대부분의 지자체가 기존에 운영되던 사립문학관을 공립으로 전환하거나 공립문학관을 신설하고 있다. 지금도 제주특별자치도와 광주광역시 등에서는 공립문학관을 새로 건설 중이다. 하지만 부산에는 전국 광역시 중 유일하게 공립문학관이 없다. 여전히 △요산 문학관 △이주홍 문학관 △김성종 추리문학관 등 사립문학관만 있는 상황이다.

 

지역 문학계의 지속
사립문학관으로는 역부족

부산에도 공립문학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 문학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은 문학 자료를 통합할 공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관련 문학 자료들이 유실될 위험에 처해있다. 공립문학관은 이러한 자료들을 관리할 아카이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부산문인협회 조성범 사무국장은 “작고(作故) 문인 재조명 사업을 펼치다 보니 재야에서 문학 활동을 해온 부산문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하지만 이들과 관련한 자료의 상당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부산 지역의 많은 문학인들은 문학 자료 보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부산작가회의 황선열 회장은 “단체나 개인 차원에서 수집하는 문학 자료를 모을 공간이 부산에는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립문학관이 없는 탓에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부산의 문학 콘텐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출판 행사, 문학 강연 등 문학 활동의 대부분이 작은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산발적으로 개최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조성범 사무국장은 “타지에서는 공립문학관을 거점으로 문학기행과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성공하고 있다”라며 “부산에는 이러한 문학 콘텐츠를 관리하는 주체나 공간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사립문학관들이 문학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해 공립문학관의 건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사립문학관의 경우 시의 지원이 부족해 재정난이나 인력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요산문학관 나여경 사무국장은 “시에서 전문인력지원비를 지원하지만 한 사람의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부족하고, 문학 축제 지원비도 20여 년 전부터 사실상 동결돼있다”라고 전했다. 결국 부산의 사립문학관들은 지역의 문학 자료를 통합적으로 취급하거나 문학 활동을 활발히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특정 작가나 분야에 한정된 자료만을 다룰 뿐 지역 문학의 중심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김성종추리문학관 김성종 관장은 “많이 늦었지만 언제든 공립문학관이 설립된다면 사립문학관 입장에서도 다행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역 문학계의 숙원
부산시는 듣는 둥 마는 둥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부산 공립문학관 추진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20여 년 전부터 지역 문학계와 시민사회가 부산문학관의 설립 요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이에 부산시가 문학관 건립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만 취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조성범 사무국장은 “공립문학관 건립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시에서는 예산이나 부지 등의 문제로 추진을 유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부산시는 문학관 추진위원회나 TF팀 구성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부산시 문화체육국 관계자는 “아직 내부적으로 특별히 논의된 것은 없다”라며 “어느 부서가 담당할지도 불명확해 문학관 관련 의견을 펼치기도 조심스럽다”라고 전했다.

또한 부산 문학계는 부산시가 문학관 추진위원회 구성에 앞서 부지 선정에 대한 문제부터 다루고 있음을 지적했다. 문학관 건립을 위한 자료 조사나 문학관의 내용 구성 논의는 뒷전이라는 이야기다. 박태일 교수는 “문학관 설립의 첫 단계는 자료의 실재에 대한 조사와 수집 활동”이라며 “부지 선정에 매달려 본격적인 시작조차 하지 못한 지자체 행정이 아쉽다”라고 밝혔다.

부산시가 문학계를 홀대해 공립문학관의 건립이 늦춰진다는 비판도 있었다. 문화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이 정작 문학 문화에 대한 정책이나 방향성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원 교수는 “문학에 관련한 정책들의 논의가 뒤로 밀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학관 추진도 지지부진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열린 공간 돼야 하는데
교류 없는 문학단체들

부산시의 미온한 대응으로 인해 지역 문학계가 공립문학관 건립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특정 주체에 의해 공립문학관이 건립·운영된다면 집단의 이익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 문학계에 위탁 관리되고 있는 진해 경남문학관은 단순히 지역 문인들의 납골당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태일 교수는 “공립문학관은 본래 문학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누려야 할 자산”이라며 “문학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은 참고 사항 정도로 끝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의 주요 문학단체들은 공립문학관 건립에 대해 뚜렷한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각자 부산시에 문학관 건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하나의 목소리로 모이지 않는 것이다. 황선열 회장은 “부산문인협회와 관련 사항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대로 공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전에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의견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부산문인협회 관계자 역시 “공립문학관 추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꾸준하게 교류하지 않아 원점이 된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의견 나누는 것이 급선무
지자체의 신호탄은 언제?

이에 △지자체 △지역 문학계 △시민사회가 합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느 주체일지라도 공립문학관 건립에 있어 독단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재원 교수는 “한쪽은 부지에 대해, 한쪽은 자료에 대해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여서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문학관은 특정 집단의 것이 아닌 모두가 누리는 공간이라는 점을 사회구성원들이 인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전했다. 지역 문학계도 공립문학관이 공공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황선열 회장은 “문학은 개인이 쓴 것일지라도 결국 공동체의 자산이다”라며 “민·관과 문학계 모두가 문제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립문학관 건립에 있어 이해관계자들의 협업이 필요한 만큼 부산시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다. 각 주체의 참여를 이끄는 역할을 지자체가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상일(동의대 한국어문학) 교수는 “문학관 추진에 대한 용역이나 공모 방식을 통해서라도 부산시가 관련 사업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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