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룡(철학) 강사
      이상룡(철학) 강사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묘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선생들은 수업 준비를 이전보다 더 많이 하는데 어째 수업을 하는 것 같지 않고,  학생들은 이전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허전하다고 한다. 우리는 대면을 기본으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라 원격수업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재택근무가 장기화하면서 소파나 침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치아에 문제가 생기는 직장인들도 많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혼란스럽다.

원격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원격수업은 대면수업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가장 흔한 원격수업 방식이 동영상 강의인데, 1차시당 재생 시간이 25분이면 된다. 50분 수업이 동영상 수업에서는 왜 25분이면 되는 걸까?거기에는 실재감이 없다. 동영상 속 교수의 말이 이전의 수업 결과를 반영했다 할지라도 동영상 속의 교수가 상대했던 학생들은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니다. 대면수업의 가장 큰 특징은 이것이다. 교수는 지금 여기의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배움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낱말의 의미가 그 낱말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낱말이 불러일으키는 관념이 아니라 그 낱말의 사용 속에 있다고 말한다. 말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낱말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사용이다. 동영상 강의에서 사라진 25분은 대면수업에서는 무엇을 하는 시간이었을까?출석을 부르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었고, 얼굴을 보면서 말의 속도를 조절하고, 눈빛에 따라 강의 내용의 수준을 조절하거나 재차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동양화의 여백이었고, 음악의 묵음이었다. 교수의 말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원격수업에서 사라진 25분이었다.

실시간 화상수업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형식적으로는 대면수업에 가깝지만 대면의 장점은 없다. 쌍방향? 쌍방향을 구현하려면 실시간보다 오히려 시간을 두고 충분히 학습한 뒤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실시간 화상수업은 선생에서 학생으로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수업이 되기 십상이다. 4차 산업혁명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특정한 시간에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무슨 혁명이란 말인가?수업의 혁신은 지식 전달 위주의 수업을 혁신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대면으로 하건 원격으로 하건 아무런 차이가 없는 수업 내용을 원격으로 한다고 해서 그 수업이 혁신되는 것은 아니다.

개념 설명이나 지식 전달을 위한 강의는 온라인으로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심화 수업이나 토론수업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개념 설명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수업의 중심에는 개념 설명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개념이야말로 생각의 집적체이기 때문이다. 개념 설명을 온라인으로 하자는 것은 이를 단순한 지식 전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교양필수 과목인 ‘컴퓨팅사고’를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은 결국 오프라인에서 새로 설명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한다. 단순 지식 전달을 이 시대의 대학에서 왜 한단 말인가?

어떤 행위가 3개월 지속되면 습관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원격수업을 하고 있는데, 내년도 장담하지 못한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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