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지방’은 건강뿐만 아니라 미용의 적으로 취급된다. 성인병은 비만이란 조건에서 출발하고 미용 측면에서도 비만은 방해 물질이기 때문이다. 지방에 대한 사람들의 과학적 이해도가 높아지며 포화나 불포화 지방, 그리고 트랜스 지방이라는 과학적 용어가 일상에 들어왔다. 포화 지방이나 트랜스 지방의 정체를 몰라도 음식에 이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정말 좋은 지방과 나쁜 지방이 존재하는 것일까.

지방을 분자 구조 관점에서 보면 글리세롤과 지방산으로 나눌 수 있다. 지방은 지방산의 모습에 따라 지방의 종류가 결정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학적 용어도 이런 지방산의 차이다. 이 차이의 핵심은 포화와 불포화에 있다. 탄소 간 결합에서 이중 결합이 존재하면 불포화됐다는 표현을 한다. 포화의 경우는 단일 결합만 존재한다. 지방산의 주요 뼈대는 탄화수소 사슬이고 이 사슬의 결합에 참여한 수소의 포화 여부가 이 둘을 결정하는 셈이다. 포화 지방산은 단순한 탄소 사슬 모양이다. 반면에 불포화 지방산은 탄소 사슬 중간에 이중 결합이 있어 수소가 결합할 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이중 결합의 존재는 지방산 모양을 다르게 만든다. 직선형 사슬이 많은 분자는 서로 잘 얽힌다. 상대적으로 이중 결합이 많으면 모양이 꺾이며 분자의 움직임이 온도에 따라 달라져 분자 간 얽힘에 영향을 준다. 불포화 지방산은 이중 결합 부분의 형태에 따라서 시스(Cis) 와 트랜스(Trans)의 형태로 나뉘며 두 구조는 기하이성질체로 볼 수 있다. 시스 구조에서는 지방산 모양이 구부러지게 된다. 반면에 트랜스 구조에서는 꺾어지긴 했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직선에 가까운 포화 지방산을 닮았다. 

만약 이런 지방산 모양을 닮은 나무토막을 쌓는다고 가정을 해 보자. 직관적으로 곧게 뻗은 나무토막이 잘 쌓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지방산 모양 때문에 고체와 액체라는 물질의 상태와 성질을 결정하게 된다. 포화 지방산이 많은 소고기 기름이 더 굳은 형태를 가지고 잘 녹지 않는다. 그래서 소기름을 많이 섭취하면 혈관 내에서 혈액의 흐름을 방해해 심혈관계 질환을 잘 유발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트랜스 지방은 불포화 지방임에도 포화 지방과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트랜스 지방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결론은 쉽게 유추될 수 있다. 포화 지방에 대한 경각심은 1953년에 생리학자 안젤 키즈에 의해 최초로 보고됐고 지금까지 별다른 검증 없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하지만 지방의 물성은 지방의 구조 하나만으로 간단한 결론에 이르기 힘들다. 실제로 순수한 포화 지방이란 것은 없다. 포화 지방산 비율이 많은 지방 물질이 있을 뿐이다. 실제 지방은 여러 지방산이 혼합돼있다. 돼지기름과 소기름의 포화 지방산 함유 비율은 각각 41%와 52%이고 나머지는 여러 종류의 불포화 지방산이다. 결국 두 물질은 포화 지방산 비율에서 약 10% 정도 차이일 뿐인데 선과 악의 운명이 갈린 셈이다. 게다가 혈관에서 예측되는 현상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지방은 담즙의 소화 작용으로 분해되고, 혈관에서도 리포단백질이라는 운반체가 지방이 혈관에 달라붙는 것을 방해한다.

최근 트랜스 지방산과 포화 지방산이 심장 관련 질병을 유발하거나 불포화 지방산이 이를 억제한다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포화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지방 물질의 섭취와 건강의 관련성은 아직도 더 많은 연구가 되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을 섭취한다고 몸에서 바로 지방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섭취된 지방은 분해되며 에너지로 변환된다. 오히려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에너지로 쓰고 남은 재료를 모아 중성 지방을 만들어 몸의 구석구석에 저장한다. 따라서 특정 지방의 선악 평가와 섭취에 대한 제한 혹은 허용 여부를 다루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 접근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유치원 때 배웠다. 과식이나 편식하지 않고 균형 있는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 먹으라는 것이었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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