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옵티콘은 바로 완전히 개체화되고, 항상 밖의 시선에 노출된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하는 수많은 작은 무대들이자 수많은 감방이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지난 9월 코로나19 감염자 A 씨가 14시에는 부산대학교 사회관에, 17시에는 해운대구의 ‘ㄱ’ 식당에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었다. A 씨가 볼 수 없는 수많은 눈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코로나19 방역 체계 탓에 그의 이동 동선이 낱낱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해운대구의 주민들은 인터넷에서 A 씨의 행실이 조심스럽지 못했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던 중 이들 또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내 동선도 공개되고 비난받으면 어떡하지?”

<감시와 처벌>의 저자 미셸 푸코는 이러한 감시 사회의 성질을 ‘판옵티콘’이라는 감옥에 빗대 설명한다. 판옵티콘은 여러 개의 독방으로 나뉜 원형의 건물 중심에 하나의 감시탑이 있는 모양의 감옥이다. 중앙탑의 감시자는 모든 독방의 죄수를 바라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감시자를 볼 수 없는 구조다. 죄수는 항상 감시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강박적으로 규율을 지키게 된다. 실제로 감시받지 않을 때조차 마찬가지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대부분 이러한 판옵티콘으로 구성돼있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의 감시 아래 무조건 규범을 따라야 하는 노동자들, 교사의 감시 아래 고개 숙여야 하는 학생들의 현실이 그렇다. 이렇게 형성된 권력 관계로 인해 감시의 대상은 주체성과 자유를 잃고 감시자에 순종하게 된다. 노동자가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지 못하고, 학생은 교사의 일방적인 권위에 반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체계로 인해 개인의 행동이 관찰·기록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이 감시자가 됐다. QR코드를 통해 모든 국민이 자신의 행적을 기록해야 했고,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면 누구나 코로나19 확진자의 일상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동 동선이 공개된 확진자 중 처제와 불륜 관계였다거나, 성매매를 일삼았다는 루머가 인터넷에서 퍼져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견했다는 듯이 익명의 감시자가 많아질수록 사회구성원들의 불안감은 더욱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전염병의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명목 아래 개인의 자유를 국가에 예속하고 감시를 허락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사회적 논의 없이 원형의 감옥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은 자신이 판옵티콘의 죄수가 됐다는 사실보다도 타인을 감시하는 일에 더 몰두했다. 흔히 자유란 획득하는 것보다 간직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여겨진다. 특히 지난 100여 년간의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국민이 자유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에 비해 최근의 우리 사회는 자유라는 가치를 너무도 쉽게 져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이 만든 판옵티콘 권력은 인간만이 부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업 교재로 <감시와 처벌>을 택한 문재원(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의 방역 체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정보 사회의 감옥이라고 할 정도로 감시의 시각이 가득해졌다”라며 “사회구성원들이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더불어 문재원 교수는 <감시와 처벌>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지 오웰의 <1984>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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