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강서구에 위치한 자연부락 ‘생곡마을’. 이름도 생소한 이 동네는 매일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향하는 집결지이다. 불과 25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남쪽에 봉화산이, 남서쪽으로는 한적골이 형성되어있는 소규모의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1994년 말, 봉화산 일대에 쓰레기 매립장 조성되면서 1996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마을에 쓰레기가 반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생곡 매립장을 기점으로 △생곡자원재활용센터 △침출수 처리시설 △폐비닐 유화 시설 △음식물 자원화 처리시설 △하수 슬러지 육상처리시설 등 총 11개의 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섰고 지금의 생곡 자원순환특화단지가 조성됐다.

생곡자원재활용센터 마당에 쌓여있는 재활용 폐기물
생곡자원재활용센터 마당에 쌓여있는 재활용 폐기물

 

일상이 된 악취

지난 6일 찾은 생곡마을의 모습은 겉보기에 한적하고 평화로운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산이 우거지고 녹음이 짙은 마을 전경과 대조적으로 퀴퀴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흘러들어와 코끝에 맴돌았다. 쓰레기 수거 차량에서 날법한 악취에 당황한 것도 잠시, 주민 그 누구도 코를 틀어막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이 정도 냄새는 이 마을에서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때마침 마을 입구 바로 건너편, 생곡자원재활용센터 마당에 여러 대의 트럭이 도착했다. 트럭들은 부산시 16개 군·구에서 싣고 온 재활용 폐기물들을 쏟아냈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늘어난 택배 포장재, 배달용 플라스틱 등으로 지난 8월에만 전년 동월 대비 513t 증가한 4,167t이 배출됐다. 끝없이 쌓인 폐기물 산은 가까이 가지 않아도 농축된 쓰레기 냄새를 풍겨왔다. 센터 옆으로 늘어선 하수 슬러지 처리시설과 그 뒷편에 위치한 음식물 자원화 처리시설, 생활폐기물 소각시설도 각기 다른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안내를 도와준 생곡폐기물처리시설대책위원회(이하 생곡대책위) 김종원 사무국장은 “구역질 나는 냄새, 불쾌한 냄새, 목이 타는 냄새 등 시설마다 방출하는 성분에 따라 악취가 달라진다”라며 혀를 찼다.

생곡마을에서는 심한 악취에 지친 주민들의 건의로 2018년부터 환경실태조사원 제도를 시행 중이다. 악취가 발생했을 때 개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아 민원을 처리하는 전담 인원을 꾸린 것이다. 환경실태조사원들은 민원이 들어오면 문제 장소에서 각 시설 및 업체 대표를 소집해서 원인을 밝히고 몇 차례의 시정 조처를 한다.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으면 원인 시설을 일시적으로 가동 중단시키는 식으로 민원을 처리한다. 시설의 규모가 큰 만큼 가동 중단은 운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는 초강수지만, 몇십 년 동안 이미 악취에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조차도 임시방편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나마 가장 심한 악취를 뿜어내던 하수 슬러지 처리시설이 4월부터 가동을 멈추면서 악취 관련 민원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인정받지 못한 피해

생곡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생곡산업단지를 지나야 한다. 생곡산업단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다수가 폐기물 처리 및 재활용 업체로 형성된 곳이다. 재활용품을 활용한 고철상, 고물상과 페트(PET) 제조 업체, 화장지 제조 업체 등 100곳 이상의 생산공장이 들어서 있다. 폐비닐을 가열하며 나오는 퀴퀴한 악취,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유해 가스, 고철상에서 발생하는 철가루 등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먼지, 유해 물질과 냄새는 바람을 타고 고스란히 마을로 향한다. 

이에 지난 2018년 생곡대책위는 주민 자체 조사를 실시해 대다수가 피부와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는 결과가 담긴 진정서를 부산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부산시는 5년마다 시행하는 쓰레기 매립장 환경 영향조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폐기물 처리시설과 주민 건강 간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종원 사무국장은 마을 바닥에 자석을 가져다 놓고 삽시간에 철가루가 수북히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주며 “철가루는 창틀, 집 마당 등 마을 어디든 있다. 마을에 사는 어린이 대다수가 피부병을 앓고 있지만 확실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은 가고 쓰레기만 남았다

생곡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주거지 주변에 폐기물 처리시설과 산업공단이 집적화돼있는 장소이자, 폐기물 처리시설의 ‘직접 영향권’으로 분류된 지역이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폐촉법)에서 정의하는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기관의 ‘직접 영향권’은 인체나 동물의 활동, 농·축산물 등에 직접적으로 환경상 영향을 미쳐서 지역주민을 이주시킬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지역을 일컫는다. 

처음 쓰레기 매립장 건설 당시, 생곡마을 주민들은 이주 대신 폐촉법에 따라 매년 10억 원 내외의 마을 단위 보상지원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예상과는 다르게 폐기물 처리시설이 늘어나면서 생활환경이 지속해서 악화됐다. 결국 주민들은 2017년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겠다는 뜻을 부산시에 전해야 했다. 

이로써 부산시는 2023년 말까지 생곡마을 주민들을 인근 도시로 이주시킬 계획이다. 주민들이 떠난 뒤 남은 토지와 건물 등은 부산시가 인수한다. 그렇게 폐기물 처리시설과 지역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은 미제로 남은 채, 20여 년 동안 이어졌던 생곡마을 주민들의 싸움은 일단락됐다.

생곡마을을 둘러싸고 형성된 폐기물 처리시설과 생곡산업단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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