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사건 이후 부산광역시는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6개월 후인 지난달 30일 부산광역시의회에서 ‘미투운동 너머 피해자의 일상을 그리다’라는 오거돈성폭력사건 대토론회가 열렸다. 끊이지 않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부대신문>이 토론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실한 대응에 
피해자의 고통만 커져

오거돈성폭력사건 대토론회(이하 토론회)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점이 가장 먼저 지적됐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인정하고 사퇴한 뒤 4개월간의 수사가 진행됐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강제추행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등 총 13개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 8월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는 무혐의 처리 후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5월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기각되기도 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소환 조사는 기자회견 뒤 한 달여 만에 처음 실시됐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측근의 핸드폰은 수사 착수 20일 만에 압수됐고, 시청 및 정무라인 자택에 대한 압수 수색은 지난 7월에서야 시작됐다. 피해자 측 변호를 맡은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빠른 기소를 촉구했지만, 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또한 부산시청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자행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4월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브리핑을 통해  2차 가해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2차 가해가 발생하자 부산시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지난 4월, 피해자의 개인 연락처로 시청 출입기자의 취재 요청 문자가 전송됐다. 시청 직원이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한 것이다. 이에 피해자가 부산시청에 신고를 접수했으나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피해자가 부산시청과 소통한 소통창구는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증명할 녹취록을 요구하거나 청렴소리함에 다시 제보하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이다솔 팀장은 “부산시청이 규정 내에서 책임지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여 피해자와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책임자는 책임감이 없고 소통창구에서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시스템 자체가 2차 가해를 불러일으킨다”라고 말했다.

실효는 실종된 채
허울만 남은 대책

부산시청이 사건 이후 발표한 <부산시 성인지력 향상 특별 대책>이 실효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부산시청은 대책의 일환으로 감사위원회 내에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을 신설했다. 하지만 시장 직속 감사위원회의 산하이기 때문에 시정에서 벗어나 고위 공직자를 감시하는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다솔 팀장은 “우리는 피해자와 함께 싸울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라며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전담기구를 비판했다. 실제로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은 사건 이후 6개월이 지나서야 피해자에게 연락해 늦장대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시장 직속의 독립된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부산시청은 설치안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부산시 성인지력 향상 특별 대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전 직원의 성인지 감수성 확립을 위해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는 대책도 기존의 양성평등 종합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토론회에 참여한 젠더어펙트연구소 권명아 소장은 “부산시는 오거돈 전 시장 사건에 대한 부산 내 여성단체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라며 “부산시의 정책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와 직무보장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젠더 정책의 불모지, 부산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성추행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동시에 부산의 근본적인 변화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젠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권명아 소장은 “전반적인 부산의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 즉 젠더 정책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부산을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젠더 정책의 부재로, 여성의 삶은 전혀 변화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의 젠더 정책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나아가 젠더 정책 자체도 부족한 실정이다. <2020 부산시 달라지는 시책과 제도>에서는 정책 분류를 여성·출산·보육을 묶어서 항목화했다. 관련한 정책으로 △아이돌봄서비스 품질 향상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및 이자 지원 △임산부 콜택시 등이 포함됐다. 이는 출산과 보육과 관련한 정책에 여성을 끼워 넣은 형태로, 젠더 정책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권명아 소장은 “젠더 정책의 전문성·고유성과 무관한 마구잡이식 추진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여성이 반드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부산시청에 젠더 정책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없어 관련 정책이 부재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현재 부산시청에서 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는 여성가족국이다. 여성가족국은 △여성가족과 △출산보육과 △아동청소년과의 총체다. 이 때문에 여성가족국은 젠더 정책이나 성평등 정책 전문 부서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젠더 정책을 담당하는 세부 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권명아 소장은 “여성가족국은 출산과 가족 중심의 업무만을 그대로 수행한다”라고 비판했다.

예산이 성평등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을 책정하고 배분하는 성인지 예산 제도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부산시청은 성인지 예산에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오히려 성인지 예산이 성 편견을 심화하거나 성차별을 부추기는 사업을 추진하는 곳에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동래구는 유교 경전 사업에 여성의 참여를 독려한다며 ‘다도와 서예’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성인지 예산 사업이 오히려 성별 분업을 강화했다며 질타를 받았다. 부산성별영향분석센터가 자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허울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자문에 대한 구속력이 없을뿐더러, 자문을 받는 절차를 그저 형식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예산 규모로만 성평등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 내실은 없고 그저 실적 쌓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껍데기는 가라”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려면

젠더 정책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보다 정책 결정권자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이 토론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젠더 정책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권자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젠더정치연구소 어.세.연 권수현 대표는 “정책결정권자가 높은 인권·성평등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라며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성범죄 사건도 제대로 해결될 수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젠더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젠더 정책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기존의 여성가족국으로 전문적인 젠더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제주특별자치도청은 지난 2018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전담조직인 ‘성평등정책관’ 을 신설했다. 성평등정책관은 △성평등기획팀 △성인지정책팀 △여성친화도시팀으로 구성돼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부서별로 양성평등담당관을 둬 모든 정책이 성평등하게 추진되게 했다. 권명아 소장은 “부산시는 성평등 정책에 대한 전문 기구가 제대로 갖춰있지 않아 젠더 정책의 비전이 없다”라며 “전문 기구가 만들어져야 부산시의 정책 결정과 관련된 인프라를 교체하고 변화를 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기관 설립도 중요하지만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문기관과의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문기관의 자문이 단순한 절차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핵심 과정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수현 대표는 “면피용 또는 전시성으로 조직을 만들어 자문을 구하는 형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며 “전문기관의 자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실효성 있는 젠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부산광역시의회에서 열린 오거돈성폭력사건 대토론회에서 발제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부산광역시의회에서 열린 오거돈성폭력사건 대토론회에서 발제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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