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태양계 바깥 저 넓은 우주 어딘가에 우리를 닮은 또 다른 존재, 바로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 않을까 기대를 해왔다. 이후 이러한 상상은 철학자와 과학자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콘텐츠로 소비되며 외계인에 대한 상상은 더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릴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이 우주 어딘가에는 정말 우리처럼 각자의 기술과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또 다른 사회가 존재하고 있을까?사실 오늘날 많은 천문학자들은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 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낮지 않게 점치고 있다. 그러한 막연한 낙관론의 가장 큰 근거는, 일단 우리 우주가 아주 거대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우주에 우리 뿐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 칼 세이건 

아직까지 실제로 포착된 외계 생명체 샘플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외계 생태계가 존재한다면 그 모습은 지구와 유사할까, 아니면 지구와 전혀 다른 모습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쟁을 결론지을 수 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주장 모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우주가 이렇게나 넓고 이렇게나 다양한 환경의 행성들이 존재하는데, 꼭 지구와 같은 환경에서만 생명이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또는 반대로, 아직까지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정확히 지구와 같은 미묘한 조건에서만 생명 탄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확률이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두 가지 의견 모두 일리있고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외계 생명체의 다양성에 관한 고민은, 흥미롭게도 먼 미래 우리가 과연 정말로 또 다른 존재와 조우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그들을 우호적으로 또는 호전적으로 대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게 만든다. 만약 다른 외계 행성에서도 지구와 정확히 똑같은 조건에서만 지구와 똑같은 방식으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했다면, 외계 생명체, 외계인들의 외모 역시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을 하고, 긴 원통형의 몸 위에 두뇌가 담긴 머리를 얹은 채 남는 두 손으로 도구를 활용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외계인 나비 족처럼 피부 색깔 정도만 다르고 인간과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다지 이질적이지 않은 외계인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나름의 적합한 조건을 찾아내, 생명 탄생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면,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탄생하고 진화한 생태계의 모습은 지구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영화 <에얼리언>이나 <스타쉽 트루퍼스>의 벌레, 파충류 형태의 징그러운 외모의 외계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외모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지능과 감정을 갖고 있는 ‘문명인'이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아무런 차별 없이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고 평화로운 교감, 교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언어도, 과학 기술도 전혀 다른 엄청난 문화 기술적 격차를 갖고 있을 두 전혀 다른 우주 문명인들이 만났을 때 결국 가장 처음 인지하게 되는 차이는 외모의 차이 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겉모습의 차이는 각 문명이 상대가 얼마나 우호적일지, 호전적일지를 판단하는 감정적인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문명은 현재 얼마나 이 연습을 충분히 해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외계 문명까지도 아니고, 같은 지구라는 작은 행성 안에서만 벌어졌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최근까지도 이 낯선 겉모습 자체에서만 오는 어색함만으로 상대를 무시하거나 섣불리 판단하는 과오를 범해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다른 외계 문명과 성숙한 문명으로서 조우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지웅배(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지웅배(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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