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문이 열린다>
         (감독  유은정| 2018)

어두운 퇴근길, 남녀가 걷고 있다.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 속 왠지 모를 긴장감과 그 안에 담긴 애정과는 달리 여자에겐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윽고 남자가 여자에게 생일 선물을 건넨다. ‘좋아해요’라는 말과 함께. 단 네 글자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결코 짧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 너머 대답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다. 지나치게 담담한 목소리로 ‘저는 연애나 결혼에 관심 없어요. 일만 해도 너무 피곤하고. 지금 그런 걸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요’라고 여자는 대답한다. 그렇게 영화는 어둡게 시작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혜정(한해인 분)은 어딘가 지쳐 보인다. 그렇지만 지친 모습조차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만큼 무기력해 보인다. 가족과 연락까지 끊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소통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늘 작은 방과 공장을 오가는 삶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이상하게 눈을 뜬다. 울고 있는 사람들과 경찰들이 보이고, 자신의 이부자리가 온통 피범벅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칼로 찌른 것이다. 온통 믿을 수 없는 상황 속 혜정은 자신이 유리창에 비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고, 쓰러진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볼 수 없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유령이 됐다. 

유령이 된 혜정이 바라본 피범벅이 된 이부자리 너머, 책상 위 메모가 유독 눈에 띈다. ‘나는 이렇게 텅텅 비어있고 무기력한데 다들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살아가겠다며 가족과의 연락도 끊은 그녀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도 외로웠던 것이다. 혼자가 좋다던 그녀는 유령이 된 이후 비어있는 병실 침대에 누워 ‘내 곁에도 누가 있을까’라고 독백한다. 

이렇듯 살아서는 상대방을 외면했던 혜정이 유령이 되고서는 누군가를 간절하게 찾는 점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아무도 유령이 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흘러 혜정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함께 살던 동료가 매일 잠 못 들고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내가 내일 죽어도 이러고 있을 거야?’라며 외치는 절규는 마음을 찌른다. 이윽고 창밖으로는 자신으로부터 고백을 거절당한 민성(이승찬 분)이 보인다. 뒤돌아선 모습에 그림자가 져 있다. 자신의 주위 그 어디에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처음에는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인지하지 못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의 감정이 점차 그 속에 담긴다. 

우리는 결국 서로가 다 외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이 외로움은 삶을 혼자 사는 것이라 착각하고, 상대를 외면했기 때문에 끝없이 느껴지는 것 아닐까. 영화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외로움을 모아 서로를 보듬었다면 그 모든 아픔은 승화됐을지도 모른다. 유령이 되고서야 상대에게 다가갔던 혜정은 마침내 이를 이해했고, 미련 없이 밤의 문을 넘었다. 안타까운 건 그녀가 영화적 클리셰를 이용해 살아나며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죽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은 그녀에겐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없지만, 우리는 그녀와 달리 살아있기에 기회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외로움을 끝없이 반추하기보단 우리 곁의 상대에게 집중하자. 내가 받은 상처가 아닌, 내가 줄 사랑을 기억하자. 유령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영화가 해답이 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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