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을 꿈꾸는 삶, 비거니즘 문화의 확산

청년층이 주도하는 비거니즘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채식을 넘어 사회적인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느끼기 쉽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가 밀집한 우리 학교에서조차 채식 식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비거니즘 인프라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부대신문>이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비거니즘 인구를 찾아 그 목소리를 들어봤다.

비거니즘이 우리나라에도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하지만 비거니즘 활동을 위한 채식 식당 등의 인프라가 우리 학교와 그 주변에는 모자란 상황이다. 

 

대학에 뿌리내린 비거니즘
우리 학교는 아직 도시락 신세

대학 내에도 밀레니얼 세대의 비거니즘 문화가  점차 자리 잡고 있다. 대학에서도 채식 동아리 활동이나 채식 식단의 제공이 이뤄지는 것이다.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는 학내에 독립적인 채식 식당을 운영 중이다. 동국대학교 채식 식당 ‘채식당’의 유진영 영양사는 “외부 업체가 시작한 채식 식당을 학교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라며 “학내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의 반응이 좋아 채식 모임이나 동호회가 단체로 찾아오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기숙사 ‘E-house’는 식단 내에 채식 메뉴를 제공하기도 했다. E-house 권진실 영양사는 “작년에 학생들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인해 채식 메뉴를 제공했다”라며 “코로나19가 유행하지 않았다면 올해에도 계속 유지할 예정이었다”라고 말했다. 국민대학교는 총학생회의 사업을 통해 채식 식단을 일시적으로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학식 및 기숙사 식단에서는 채식 식단을 찾을 수 없다. 채식 및 할랄 식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지만, 아직 도입하지못한 상황이다. 금정회관과 학생회관 식당을 운영하는 부산대학교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채식 식단을 제공할 의향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생협 권경규 팀장은 “서울대학교 채식 식당을 직접 방문하고 관련 사항을 교내 회의에서도 여러 번 논의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현재 식당의 시설과 운영방식의 한계로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채식 식단을 주 1회로만 제공해 수요를 파악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문창회관과 샛벌회관 식당을 운영하는 청담F&B 측은 지속적인 수익성 문제로 인해 채식 식단의 제공이 어렵다는 의견이다.

학교 식당 내 채식 식단의 부재로 인해 우리 학교 채식주의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정원(임상영양학 석사 15) 씨는 “비건 지향을 하고 난 뒤 부터는 학식을 먹을 수 없어 도시락을 싸거나 외부의 채식 식당까지 가야 했다”라며 “학식에 채식 식단이 없어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라고 말했다. 학내에 채식 식단을 제공하지 않는 부산 지역 내 다른 대학교의 학생들도 같은 상황이다. 타 대학에 재학 중인 김지현(해운대구, 22) 씨는 “학내 채식 식단이 없어 곤란하다”라며 “결국 복학 후에는 도시락을 싸다닐 계획이다”라는 고충을 토로했다.

 

늘어나는 녹색 식탁
부산에서는 찾기 힘들어

학내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 전체에서도 비거니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다. 부산 지역에 비거니즘 인구를 위한 식당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전국의 채식 식당은 약 450~500개로 추산된다. 그중 수도권 지역의 채식 식당이 300개 이상인 반면 부산 지역에 있는 채식 식당은 31개에 불과하다. 부산광역시보다 인구가 적은 대구광역시의 채식 식당이 44개인 것에 비해서도 그 수가 모자란 상황이다. 비거니즘 생활을 실천하는 황민연(서울시, 26) 씨는 “현재 거주하는 서울에 비해 부산의 본가 근처에서는 채식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없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우리 학교가 위치한 금정구에서 엄격한 비거니즘 식사가 가능한 식당은 2곳 뿐이다. 채식 매뉴가 있는 곳을 포함하면 5곳이다. 박정원 씨는 “타 대학과 비교하면 그나마 우리 학교 근처에는 채식 식당이 많은 편”라며 “다른 대학교 근처에는 채식 식당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 내 지역 간에도 채식 식당의 수는 차이를 보였다. 대부분의 채식 식당이 해운대구와 수영구 등 동부산 지역에 집중적으로 위치한 것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수영구의 채식 식당은 10곳이 있었지만, 중구에는 2곳뿐이었다. 실제로 채식을 지향하는 김소민(중구, 26) 씨는 “남포동 인근에는 비건 혹은 채식 식단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지현 씨는 “해운대구 근처에는 다른 곳에 비해 비건 식당이 꽤 있는 편”이라고 전했다.

부산에서는 채식 식당이 모자란 것뿐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 채식 식단을 요구하는 일이 더욱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비거니즘 인프라가 비교적 잘 마련된 수도권에 비해 부산 지역의 식당에서는 비거니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황민연 씨는 “채식 식당이 많은 이화여대 주변 같은 경우에는 비건이라는 단어를 식당 주인분들이 바로 알아듣는다”라며 “반면 부산 지역 등에서는 일반 식당에서 비건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경우가 드물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채식 모임을 운영 중인 김은정(해운대구, 29) 씨도 “회식으로 규모가 큰 양식당을 방문했을 때 기존 메뉴에서 육류를 빼달라고 양해를 구했다”라며 “하지만 식당에서 비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라는 경험을 밝혔다.

부산광역시 각 자치구별 비건‧비건지원이 가능한 식당의 수
부산광역시 각 자치구별 비건‧비건지원이 가능한 식당의 수

 

축제도 서울에서만
부족한 비거니즘 문화

부산 지역에는 비거니즘 축제, 행사나 커뮤니티 등 전반적인 비거니즘 문화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비건 페스티벌’ 등 대규모 비거니즘 축제들이 수도권에서 열리는 반면 부산에서는 소규모의 행사가 1년에 2~3회 개최될 뿐이었다. 이에 김은정 씨는 “비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늘 큰맘 먹고 서울까지 가고 있다”라며 “부산에서는 비건 식당에서 소소하게 여는 행사나 장터가 대부분이고 대규모 축제는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황민연 씨도 “대규모 행사가 서울에서만 열린다는 점이 지역 내 비거니즘 확산의 걸림돌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부산 지역의 비거니즘 커뮤니티도 수도권에 비해 적은 상황이다. 이에 김은정 씨는 비거니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부산에 직접 온·오프라인 채식 모임을 만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부산의 채식 인구가 적기 때문에 관련 문화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하지만 박정원 씨는 “부산에서 열렸던 '뿌리 마르쉐 축제'나 '제로 페스티벌'에 참석했을 때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이 참여했다”라며 부산에도 비거니즘 문화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족한 비거니즘 인프라에
목소리 못 내는 채식 인구

지역 내 인프라의 부족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황민연 씨는 “부산에는 서울에 비해 비거니즘 식당이나 축제 등이 활발하지 못하다”라며 “이 때문에 채식을 접하는 인구가 자연스럽게 적어지고 비거니즘 문화가 가시화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도 “지역에도 숨어있는 채식 선호자들이 매우 많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라며 “이들이 채식에 대한 권리와 요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와 여건이 조성돼야만 비거니즘 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했다.

 

나보다 강한 우리
모여야 퍼지는 비거니즘

지역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비거니즘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채식주의자 커뮤니티가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채식주의자들의 자체적인 소통을 통해 비거니즘 문화를 유지하고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는 △채식 식당의 위치 △채식 요리법 △채식주의에 관한 지식 △실생활에서 채식주의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며 채식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고, 채식주의 생활을 하며 사회·집단에서 겪던 소외감을 없애주는 이점을 갖는다. 김소민 씨는 “채식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유대감을 느꼈다”라며 “지속적인 채식 생활을 실천하는 원동력이 됐다”라고 말했다. 김은정 씨도 “회원들끼리 같이 채식 축제에 참여하는 등 서로 간의 채식 생활을 돕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커뮤니티 형성은 비거니즘 문화의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박정원 씨가 운영하는 학내 채식 동아리 ‘비모’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채식 영화제 기획에 참여했다. 이에 관해 박정원 씨는 “영화제 후 많은 관객분이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후기를 남겼다”라며 “이러한 외부 행사에 채식 커뮤니티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비거니즘의 확산에 도움이 됐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비채식주의자도 비거니즘 모임에 참여해 비거니즘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현재 운영 중인 다수의 비거니즘 모임은 비채식주의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황민연 씨는 “종종 채식을 하지 않아 채식 모임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들이 있다”라며 “하지만 대부분의 채식 모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들어가면 비거니즘에 대해 색다르게 바라보게 된다”라고 전했다. 김소민 씨도 “비거니즘 모임에 채식주의자만 있다면 자칫 ‘우리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라며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성을 낮춰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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