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법 개정안,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찬반 여부를 두고 논쟁했던 낙태죄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이 개정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대해서도 여전히 많은 반발이 나온다. 이에 개정안의 어떤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또한 법률 개정으로 확대될 낙태 시술이 안전하게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마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살펴봤다.

 낙태죄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낙태죄 폐지가 우리 사회 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낙태죄 허용범위가 확대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들이 남아있다. 낙태시술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준비돼야 할까.

유명무실한 상담이 되지 않으려면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이하 낙태)을 결정할 때 상담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한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하는 경우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 기간만 거치면 사유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를 위해 보건소와 비영리법인 등에 종합상담기관을 설치해 임신의 유지 여부에 관한 상담을 제공하고, 상담사실 확인서도 발급하게 했다.

이러한 상담제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센터와 상담원, 매뉴얼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현재 개정안에 대해서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뤄질 상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상담기관은 보건소와 유사한 형태로 전국 곳곳에 설치 혹은 지정된다. 상담 기관에 따라 상담의 내용이나 질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부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 황나미 연구위원은 <낙태, 무엇이 문제인가?>  를 통해 ‘상담절차, 상담 전문 인력 및 비용 부담 그리고 개인 사생활 보호방안 등의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한 낙태가 이뤄지기 위해

낙태 시술을 담당하는 의사의 직장과 범위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법안에서 낙태 시술을 시행하는 의사의 직종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에서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안전한 시술을 위해 낙태 시술자를 산부인과 의사로 한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낙태 시술은 합병증과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는 시술이기에 산부인과 전문의만이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낙태 시술은 결코 간단한 시술이 아니다”라며 “시술 이후 합병증과 후유증을 책임질 수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만이 낙태 시술을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약물 낙태를 위한 약물의 도입과 안전성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 개정안에서 절차적 허용요건이 새로 규정되면서 미프진 등 자연유산 유도 약물의 사용이 허용됐다. 여기에 약물의 안전성 검증과 국내 도입 절차를 속히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미프진 도입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인숙 의원은 ‘허가심사 완료까지 최소 120일이 필요하며 품목을 허가한 후에도 약품 처방·판매·복용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가능해도 병원 찾아 천리길?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병원 등의 의료 인프라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2014년 892곳에서 2019년 6월 711곳으로 4년 만에 20.2%가 감소했다. 분만 가능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시군구도 15곳이나 존재했다. 특히 분만 가능 의료기관의 감소가 지방에서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로 낙태 시술자를 한정할 경우,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여성은 낙태 시술을 받기 어렵다.

낙태 시술에 대해 의료인이 인공임신중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낙태의 과정은 더욱 힘들어진다. 개정안에서는 의사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 진료를 거부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의료접근성이 낮은 지역의 경우, 낙태시술을 거부당한 여성은 새로운 의료 기관을 찾는데 고충을 겪는다.

의료진이 낙태 시술을 거부한 경우 환자를 상담센터로 인계하는 절차도 비판받고 있다.  낙태가 가능한 병원이 아닌 상담센터로 여성을 안내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낮은 의료접근성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이미 낙태를 위해 병원을 방문한 사람이 상담 후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며 “다른 병원이 아니라 상담센터로 인계하는 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그밖에 놓여진 근본적 과제들

임신 24주까지 낙태가 합법화되는 만큼 제도의 변화와 함께 사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낙태를 선택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편견을 없애야한다. 또한 낙태를 개인의 자유권을 보장하는 요건으로 여기는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김양지영 교수는 “낙태에 대해 편견 없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서로 연관된 조건들이기에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나가면 제도의 변화도 함께 맞물려 나갈 것이다”라고 사회적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후 여성의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 방향>을 통해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괄적 성교육의 도입과 국가 차원의 재생산권 관련 교육을 입법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안전한 낙태뿐만 아니라 행복한 출산을 위한 사회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택하는 경우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사회적·금전적 환경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영경(제주대 사회학) 교수는 “무엇보다도 외적 요인으로 임신을 원하지 않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출산에 대해 여성이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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