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은 이러한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끊임없이 몸살을 앓고 있는 부산 클래식 음악계의 상황을 〈부대신문〉이 짚어봤다. 

최근 클래식 음악과 음악인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을 차지한 이후부터다. 당시 조성진의 음반은 만장이 넘는 예약 주문만으로 온라인사이트 종합 음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보통 국내외 유명 연주가나 성악가의 경우 첫 제작 물량은 2천 장 이내다. 하지만 당시 조성진의 음반은 5만 장을 제작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는 클래식에 대한 국내 관심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2019 공연예술실태조사>에 의하면 클래식 음악공연의 연간 공연 건수는 12,836건으로 연극의 5,095건, 뮤지컬의 4,879건에 비해 월등히 높다. 외국과 비교해 클래식에 대한 20·30대의 관심이 높은 것도 특별한 점이다. 2018년에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를 통해 클래식 공연 티켓을 구매한 사람 중 10·20대는 20.9%, 30대는 32.9%로 40대 미만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젊은 관객이 많다는 건 지속적인 관객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클래식 음악계에 긍정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클래식을 대중화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립교향악단과 SM엔터테인먼트가 장르 간 협업을 맺기도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SM엔터테인먼트의 케이팝을 편곡·연주해 클래식 음악계와 대중음악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데이비드 이가 지휘한 ‘빨간 맛’은 클래식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을 높였다. 

 

제 2의 도시 부산
음악은 예외?

그러나 부산에서는 이러한 클래식 음악계의 성행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서울과 비교했을 때 공연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9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공연시설의 과반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면 부산의 공연시설은 모두 63개로 전국 공연시설의 6.1%에 불과하다. 김정권(음악학) 교수는 “최근 높은 수준의 연주 장소가 늘어나고 있어 음악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라며 “다만 서울에 그 시설이 집중된 편”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러한 인프라 부족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2019 부산 사회조사 보고서〉의 ‘부산시 문화시설 수 만족도’ 조사 결과 △매우 충분하다 2.1% △충분하다 14.5% △보통이다 54.3% △불충분하다 25.5% △매우 불충분하다 3.6%로 시민들의 만족도가 낮은 상황이다.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지역별 공연 횟수도 차이가 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행한 <2019 문예연감>에 따르면 국내 전체 11,333회의 클래식 공연 중 서울·경기가 5,262회로 46%를 차지했다. 반면 부산은 981회로 8.7%의 낮은 비율을 보였다. 

부산 지역 내의 인프라 격차도 심각하다. 2018년 기준 부산에 31개의 공공 공연장이 있으나 그 분포가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 △강서구 △연제구 △수영구에는 공공 공연장이 없다. 특히 서구의 경우 민간 공연장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부산 지역 내 공연장 간 공연 횟수 차이도 큰 상황이다. <2019 문예연감>에 따르면 부산에서 클래식과 관련해 공연·전시가 가장 많이 이뤄진 문화 시설은 △부산문화회관 △금정문화회관 △해운대문화회관 △부산시민회관 △을숙도문화회관(갤러리 을숙도) 순이다. 지자체가 설립·운영하는 종합 문화공간에서 주로 열린 것이다. 문제는 공연의 상당 수가 동부산에 치우쳐져 있을 뿐 아니라 부산 중심에만 위치해 서부산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는 접근성이 낮은 것이다. 

또한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벡스코 오디토리움 등 첨단 대형 공연장과 소향 뮤지컬 센터 등은 대규모 뮤지컬 상연을 우선시하고 있어 부산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한 상황이다. 

 

부족한 인프라에 
자라나지 못하는 음악인들

부산의 클래식 교육 인프라가 부실한 탓에 클래식 음악계가 성장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부산 소재 대학의 음악학과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신라대 음악학과의 경우 폐과 방침 논란이 있었다. 신라대는 폐과 방침에 대해 ‘1대 1 레슨을 많이 해야 하는 탓에 △많은 교원 △질 좋은 악기 △연습 공간의 제공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밝혔다. 이후 부산음악협회를 중심으로 부산시 예술음악단체장, 원로 음악인이 모여 긴급 성명서를 냈다. 당시 부산음악협회에서는 “예술 전공의 특성을 무시하고 경제 논리로만 따져 음악학과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학생들의 폐지 반대 집회도 있었다. 다행히 신라대가 폐과 방침을 철회했으나 2016년에 이어 올해 또 폐과 위기를 겪은 만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음악협회 관계자는 “지역 예술의 황폐화는 국가 미래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라며 지역 대학에서 음악학과를 폐과하려는 현 상황을 지적했다. 

지역 클래식 음악계의 교육 인프라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문제에 대해 음악가들은 ‘모로 가도 서울’이라는 선입견을 이유로 들었다. 톡 클래식 그룹 채승기 대표는 “클래식 음악계의 경우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학연이 심한 편”이라며 “지역 대학 출신이 음악계에서 인지도를 쌓기 어려운 상황 속 학연 중심의 편향성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지역 클래식 음악계의 발전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의 외면 속 
불협화음만 늘어나

일부 전문가들은 공연 시설과 교육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의 황금시간대에 클래식 음악 방송이 편성되지 않는 상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 지원사업 예산 2억 5000만 원을 들여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를 개최했다. 지자체들도 국고 지원금의 10~50% 범위 내에서 지방비를 투입해 행사를 지원한다. 이와 관련해 채승기 대표는 “소외되고 상업성이 떨어지는 문화예술을 장려해야 할 문체부가 충분히 관심 포화상태인 트로트 저변 확대를 위한 행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상황”이라며 “순수예술인 클래식계에 대한 정부의 관심 부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클래식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클래식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커다란 홀에서 격식을 차리는 것이 클래식 공연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라움 프라다바코의 박호경 대표는 “클래식을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탓에 부산 지역 클래식 공연 수요가 높지않은 상황”이라며 “편견을 깰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관심도를 높여야 한다” 말했다.

 

부산시의 노력
희망이 되기엔 일러

한편 부산시는 클래식 공연 시설 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 건립 중인 오페라 하우스, 부산국제아트센터는 지역 음악가를 발굴하고 부산 문화예술의 원동력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오페라 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 건립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완공 날짜가 늦춰지고 있다. 2018년에는 설계 과정에서 이의가 제기돼 건립 재검토가 이뤄지기도 했다. 특히 부산국제아트센터의 경우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지어질 예정이라 음악인들의 기대가 높지만, 재원 마련이 어려운 상황 속 입찰이 미뤄지며 언제 완공될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오시리아 문화 단지에 다용도 공간을 마련해 클래식 공연장을 조성하겠다는 이야기도 있다. 2023년 9월 완공 예정인 오시리아 문화예술타운이 부산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케이팝 △미술 △EDM 등을 모두 다루는 복합문화공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 공연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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