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바로 유정 조동호 선생의 생일입니다. 1892년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격동기를 거쳤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우리 민족의 등불과 같았습니다.
  유정 조동호 선생은 몽양 여운형 선생과 깊은 우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년 시절, 독립운동에 대한 열의로 무작정 상하이로 떠난 그들은 중국에서 함께 대학을 나온 뒤 신한청년당을 조직했습니다. 신한청년당에서 미국 및 프랑스에 <독립청원서>를 알리며 활동하던 조동호는 임시정부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3권분립 체제와 민주 공화제를 수립하는 데에 조동호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또한 <독립신문> 발행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임시정부와 간도 지방의 독립운동 소식을 국내외에 알리며 민족의 독립과 단결을 주장했습니다. 


조동호 선생은 국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언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23년 말 귀국한 그는 <동아일보>의 기자 겸 논설위원과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1932년 3월엔 <중외일보>를 인수해 <조선중앙일보>로 개칭 후 간행을 시작했습니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경기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일로 유명한 <조선중앙일보>에서 편집 고문으로 항일논설을 집필 및 게재하였습니다. 


조동호 선생은 해방이 가까워지던 1944년 8월 10일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했습니다. 옥중에서 광복의 환희를 만끽한 그는 출옥 후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일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호를 딴 유정 정치학교를 설립해 교육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1947년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큰 충격을 받은 뒤 낙향합니다. 망국의 언론인으로서 민족의 바른길을 위해 살았던 유정 조동호 선생. 그러나 국내에서는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여한 급진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사상의 독립운동가로만 보기도 합니다. 조동호 선생의 대한민국 건국훈장 수여 15주년을 맞아 독립을 위한 그의 노력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번 달 24일 유정 조동호 선생의 생일을 맞이해, 그를 기억해보면 어떨까요.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