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리:워크’ 정보경 대표

‘인물’면에선 부산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들이 걸어온 길과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봅니다.

일을 마치고 고된 하루를 끝낸 저녁. 망미역 1번 출구 뒤편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느 골목길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는 무슨 일일까. 그들의 발걸음은 이내 한 건물의 2층에서 멈춘다. 문을 열면 때론 지역 창작자가, 또 때론 커뮤니티 매니저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한걸음 안쪽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일상과 관계 그리고 동네에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그렇게 ‘다시’ 우리 동네에 사람과 일거리가 교차 되는 이곳은, ‘리:크로스’(이하 리크로스)이다.


리크로스는 협동조합 ‘리:워크’(이하 리워크)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리워크는 수영구 망미동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서 살고 일하고 놀자’는 목표로 뭉쳤다.  현재 그들은 동네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여기에 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리워크 정보경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 동네는 내가 바꾼다!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정보경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서울과 일본에서 일하다가, 부산에 정착해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부산의 원도심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 이때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기구)와 함께 마을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하나의 궁금증이 떠올랐다. 왜 청년들은 주로 살고, 활동하는 동부산이 아니라 서부산의 산꼭대기에 올라와서 일해야 할까? 이유는 단순했다. 마을 지원 사업이 대부분 원도심에 몰려있어서였다. 평소 사는 곳, 노는 곳 그리고 일하는 곳이 일치하는 ‘컴팩트 도시’를 꿈꾸던 정보경 대표는 결심을 다졌다. “남이 지원해주는 거 말고 우리가 여기에서 해보자”.


정보경 대표는 학창시절을 보냈고 현재도 사는 수영구에서 마을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함께할 팀원을 찾아 마을과 관련한 활동들에 참여했다. 그러다 2017년 5월, 수영구에서 열린 ‘도시재생아카데미’에서 지금의 리워크 조합원들을 만났다. 그들 모두 망미동에 살면서 정보경 대표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뜻이 맞은 이들은 2018년 3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상반기까지 망미동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정보경 대표는 “아무리 역량있는 팀원들이 모여도,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일’로 동네 문제를 풀어내자고 모였으니까, 동네를 파악하러 다닌 거죠”라고 설명했다.


몇 개월 동안 조사하면서 그들은 망미동에 사람은 많은데 커뮤니티 공간이 부족하단 걸 알아냈다. “망미동에 2040 청년 인구가 생각보다 많이 살아요. 그런데 살기만 하는 거예요. 일하고 돌아와도 마땅한 커뮤니티 공간도 없어서 다른 곳에서 놀고요. 2017년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처음 생겼을 정도였거든요. 동네 주민과 인터뷰 했을 때 정체된 공간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이 모일 공간을 만들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 거죠”. 그렇게 ‘골목길 문화 기획’의 첫 시작인 리크로스가 탄생했다.

좋아하는 걸 함께하며
커지는 공동체

2018년 11월에 오픈한 리크로스는 ‘일과 사람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지역 창작자는 자신의 노하우와 기술을 나누고, 주민들은 자신의 취향을 기르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서 커뮤니티에 참여한다. 여기서 리크로스는 플랫폼 역할을 맡는 셈이다. 이때 창작자는 순수예술 외에도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된다. 정보경 대표는 “자신의 노하우를 가지고 부산에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일로 풀어낸다면 모두 창작자”라며 “망미 미식회에서는 망미 골목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도 오세요. 먹기만 하던 디저트를 알게 되고, 같이 먹으면서 비슷한 취향의 사람과 대화도 나눌 수 있죠”라고 말했다. 취향. 리크로스에 대해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는 요소였다. 정보경 대표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골목길 문화 기획’에 취향과 문화예술을 접목한 이유가 있는가.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싶었어요. 여태 커뮤니티 공간하면 술집, 카페 말고 없었어요. 그런 건 정말 공간일 뿐이잖아요. 교류할 수 있는 문화가 없죠. 교류가 가능한 매개체가 우리에겐 필요했어요. 그냥 모이라고 모이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공동체를 만들어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잖아요. 그때 떠올린 게 취향인 거죠. 누구나 좋아하는 건 하나씩 있잖아요. 그걸로 모이면 소통도 원활하고 세대 차이도 적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공동체 문화니, 문화예술을 앞세우기보다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커뮤니티가 자리 잡는 구조가 되길 바란 거예요.


창작자와의 상생도 중요했어요. 수도권에 가지 않고 부산에서 돈도 벌고 살고 싶은 건 창작자도 마찬가지였어요. 취향으로 시민과 창작자를 연결하면, 창작자는 클래스를 맡아 일도 하고 자신의 작품도 선보일 기회를 만들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저희 클래스가 가격대가 낮진 않아요. 그게 창작자에 대한 대우라고 생각해요. 시장에서 구매되고 소비되어야 창작자도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으니까요.

△이외에도 책맥(책과 맥주), 북토크 등 다양한 활동이 있던데.
가장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건 창작자분들과의 협업이긴 해요. 하지만 창작자 중심으로만 콘텐츠를 구성하면, 이런 분야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보일 수 있잖아요. 더 많은 사람이 부담가지지 않고 이곳에서 즐기기를 바랐어요. 클래스가 아니더라도 커뮤니티 문화가 있다는 걸 알고 사람들을 만나도록요. 그래서 책맥이나 북토크같은 행사도 열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런 공간이 있고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슬세권 수영구를 꿈꾼다

동네에서 동네 사업을 하는 것이 불안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보경 대표는 “어떤 불안감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할 때 오히려 ‘왜 안돼’라고 말하는 성향이 있더라고요. 또 문제가 있는데도 관습적으로 해와서라는 이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문제가 있으면 바꿔야죠”. 거주하는 동네에서 사업을 시작한 점도 한몫했다. 전혀 모르는 동네에서는 실패가 두려웠겠지만, 망미동은 문제가 명확하게 보였고 해결하고 싶다는 욕심이 두려움보다 더 컸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정보경 대표는 ‘슬세권’ 형성을 말했다. 슬세권은 슬리퍼 신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을 뜻하는 신조어다. 리크로스와 같은 공간을 수영구에 2개 더 확장하고, 언젠가 건물 매입까지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동네를 살리고 싶은 사람이 함께 모이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수영구 뉴딜사업에도 집중할 예정이다. 현재 리크로스는 ‘도도수영’(도시거주민과 도시방문객을 위한 도시 수영)에 지역 주민이자 지역 기업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면서 상생하는 구조를 만드려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경 대표는 우리와 같은 뜻을 가졌다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동네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를 통해 더 많으신 분들이 이런 일도 있구나, 이런 일도 직업이 될 수 있구나라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 일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단 것도요”.
 

지난 1일 만난 협동조합 ‘리워크’정보경 대표는 인터뷰 내내 ‘동네’와 ‘커뮤니티’를 강조했다
지난 1일 만난 협동조합 ‘리워크’정보경 대표는 인터뷰 내내 ‘동네’와 ‘커뮤니티’를 강조했다
리:크로스에서 열리는 클래스 ‘페인트 부산’이 진행되는 모습
리:크로스에서 열리는 클래스 ‘페인트 부산’이 진행되는 모습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