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모지. 오랫동안 부산을 수식해온 말이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 국제관광도시 등을 표방해 불모지의 오명을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산만의 지역 문화콘텐츠 개발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역 스토리텔링이 제시되고 있다.

 

미개척지 부산의 문화 콘텐츠

부산만의 문화 자원이 많지만, 콘텐츠로 개발하는 데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하니(관광컨벤션학) 교수는 “사실 부산의 관광문화 자원은 오히려 타 도시보다 많은 정도"라며 “자원을 개발하는 능력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콘텐츠 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한 ‘2020 특별 여행주간’에서 부산의 전월 대비 지역 방문자 수 증가율이 657만 3,000명으로 3.7%에 그쳤다. 이는 △제주도 23.6% △강원도 18.6% △인천 9.0%에 비해 저조한 성적이다. 특히 전년과 비교하면 16.3%p 낮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는 국제관광도시에 선정된 이후 5년간 1,5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예산의 대부분이 도시 브랜드 구축과 마케팅에 편성됐다. 이에 문화 및 관광 콘텐츠 개발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약 반년이 흐른 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난 6월 4일 개최된 ‘부산국제관광도시 육성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에서, 부산시는 올해 추진사업으로 △부산관광 데이터 분석 센터 운영 △외국어 유튜브 콘텐츠 및 홍보 동영상 제작 △부산형 와이파이 보급 △관광안내표지 표준화 등을 발표했다. 여전히 문화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보다 홍보 및 서비스에만 주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지역 관광 업계와 문화 학계는 계속해서 비판했다. 부산 문화의 전반적인 문제가 콘텐츠 개발의 부족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장재진(동명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 교수는 “부산은 문화 자원 자체가 부족하다기보다 콘텐츠 개발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고유의 문화콘텐츠가 없다면 관광을 비롯한 △문화예술 △축제 △공연 △상품 △먹거리 △생활문화 등이 자연스레 힘을 잃는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의 문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 문화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대책으로 제시됐다.
 
 

문화 자원과 콘텐츠를 잇는 스토리텔링

지역 스토리텔링은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 자원을 이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에는 △역사 △설화 △자연경관 △생태 △인물 △장소 등의 요소가 문화 자원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만들어낸 이야기를 △관광 △축제 △공연 △문화예술 △출판 △상품 △먹거리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하고 사회에 공유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이 이뤄지는 것이다. 경주는 천년 고도라는 역사 자원을 문화콘텐츠 곳곳에 적용한 대표적 예다. 성덕대왕신종이라는 문화재에 에밀레종이라는 이야기를 더해 꾸미는 식이다. 

기존의 문화 자원을 변형 및 재구성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경기도 양평의 소나기 마을이 그 예시다. 소나기 마을은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녀가 양평으로 이사한다는 한 구절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구성해냈다. 김민옥(경성대 글로컬문화학) 교수는 “<소나기>를 이야기로 적절히 가공해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만든 좋은 사례”라고 전했다.

지역에 접목할 수 있는 문화 자원이 없다면 창조해내는 방법도 있다. 함평나비대축제는 함평의 문화와 크게 관련 없던 나비라는 소재를 선택해 친환경, 생태주의라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구상했다.

 

안팎을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의 매력

지역 스토리텔링은 외부인에게 감정 이입 및 공감대 형성을 일으킨다는 면에서 이점이 있다. 김민옥 교수는 “사람은 이야기를 경험할 때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공감에 깊게 휩싸인다”라며 “그렇기에 지역의 △문화 △기억 △장소를 이야기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공감과 경험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지역 정체성을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남이섬의 나미나라 공화국은 이러한 지역 스토리텔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남이섬은 육지와 독립됐다는 지리적 특성과 독특한 자연경관을 이용해 해외여행이라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구축했다. 입장권이 아닌 여권을 이용하고, 나미통보라는 특수 화폐를 사용하는 등 관광객에게 정말 타국에 와있는 듯한 몰입감과 경험을 제공한다. 이렇게 나미나라 공화국은 한 해 방문객 330만명이라는 성과를 이루며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대표 관광지가 됐다.

지역 스토리텔링은 해당 지역민에게도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만들어낸 지역의 문화콘텐츠는 지역민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높인다. 공동의 이야기로 문화콘텐츠를 생성, 공유하는 것은 지역 문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망미골목(망미단길)도 지역민 중심의 스토리텔링이 이뤄진 좋은 사례다. 실제로 망미동 주민인 기획자와 청년들은 <골목눔룬(망미골목에서 만난 것들)>, <망미동>같은 책자를 제작해 ‘망미골목 문화 르네상스’라는 지역만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처럼 지역민들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창조 △재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이에 김하니 교수는 “스토리텔링을 잘 하기 위해선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는 로컬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라며 최근 제주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해녀의 부엌’을 예시로 들었다. 해녀의 부엌은 지역민인 제주의 해녀와 청년 예술인들이 같이 만들어낸 식당 겸 공연장이다.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해녀 등의 문화 원천을 스토리텔링해 콘텐츠화했다. 한편 지역 문화의 장기적인 지속과 성공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 공동체의 삶을 고려해 개발·운영해야 한다. 만약 지역민을 배제한 채 지역의 문화 개발만을 중요시한다면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부산의 태극도마을(감천문화마을)은 대외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끼쳤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주민들이 소음과 주정차 문제 등 여러 사생활 침해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문화 자원 캐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부산 고유의 문화 자원이 풍부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부산에는 △산 △바다 △강 △온천을 모두 품고 있다는 4포지향의 자연과, △임진왜란 △조선 통신사 △일본 전관 거류지 △피란수도 △산복도로 △남동임해공업지역 △부마민주항쟁 등의 역사 자원이 즐비하다. 또한 장산국 건국 신화나 고운 최치원 이야기 등 설화 자원도 다양하다. 김하니 교수는 “흰여울문화마을이나 임시정부기념관 등을 다니며 부산의 이야기 자원이 넘친다고 생각했다”라며 “부산의 가치 있는 미발굴 자원들을 재치있게 포장해야 부산 문화가 더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를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큰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데에 각종 주체의 협업이 중요하다고도 설명했다. 이에 장재진 교수는 “부산의 △지역주민 △관공서 △사업체 △교육기관 등이 같은 방향성으로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부산의 문화가 제대로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