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주민들은 큰병에 걸리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가벼운 질병은 동네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지만, 조 금이라도 복잡한 검사가 필요하면 수 도권의 큰 병원으로 가야하기 때문이 다. 이런 서러움은 하루 이틀 일이 아 니지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불편함 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지역 의사 전형을 신설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의료계는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문제 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현재 정부와 의료계가 정책 의 타당성을 따지며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 속, 지금도 의료 격차는 지역 주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서울에는 있고, 지방에는 없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과 달리 대부분의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응급 중증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의료기관은 병상 수와 진 료 과목에 따라 구분된다. 1차 의료기관은 30인 미만의 병상을 갖추고 주로 외래 환 자를 진료하며 보건소, 의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2차 의료기관은 30인 이상의 병상 수를 보유하고 법적 진료과목을 충족한 병원, 종합 병원을 의미한다. 3차 의료 기관은 500개 병상 이상 규모의 종합병원 및 의과대학 부속 병원이 해당하며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24시간 체제로 실시된다. 1·2차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어렵거나 긴급 대처가 필요한 환자를 3차 의료기관 에서 수용한다. 이 때문에 3차 의료기관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3차 의료 기관 수는 큰 차이를 보인다. 현재 서울은 3차 의료기관이 13곳 지정된 반면, 부산을 포함한 경남은 6곳, 경북은 5곳, 강원과 충북의 경우 각 1곳뿐이다.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활동하는 의사 수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OECD국가의 인구 천 명당 평균 의사 수가 3.4명이다. 우리나라 전체의 인구 천 명당 활 동 의사 수는 2.3명으로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지역에 따라 2.3명에도 미치지 않는 곳도 많다. 서울의 경우 3.12명 으로 우리나라 평균을 웃도는 반면 경북은 1.38명으로 평균을 한참 밑돈다. 이외 에 충남 1.5명, 충북 1.58명 등으로 우리 나라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인 부산도 2.3명으로 겨우 평균을 충족했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것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성명서에서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지방이나 중소병원에서는 야간 시 의사가 없는 무의촌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병원 찾아 천리길

지역마다 병원 접근성에도 차이가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특광역시 주민의 경우 약 95.8%가 차로 20분 안에 응급실에 도착 가능하다. 하지만 도 단위 시·군 주민은 약 42.6%가 20분 안에 도착이 불가능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약 10분 거리(750m)에 병원이 있는 곳에 사는 인구 비율이 1%도 되지 않는 시·군이 29곳 있었다. 이는 대부분 농촌 지역으로 경북이 7개 시·군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도가 5개 시·군, 충남이 4개 시·군으로 뒤를 이었다.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은 치료를 위해 먼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과 대도시가 아닌 지역은 필수 의료서비스가 충족되지 않아, 주민들은 진료를 위해서 대 도시로 이동을 해야 한다. 응급 상황의 경우 이송 시간이 환자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의료 취약 지역에 사는 환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특히 △장애인 △어린이 △산모와 같은 약자의 경우 위험도가 더 높다. 실제로 산모가 분만의료기관에 도달하는 시간이 전남의 경우 42.4분으로 서울이 3.1분인 것에 비해 13배 가까이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격차, 생명을 위협하다

지역 간 의료격차는 사망률 격차로 이어 진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국민 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당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 인구 비율이 서울 은 28.3명이었지만, 경남은 45.3명이었다. 발병 즉시 즉각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중증 의료분야에서의 지역별 차이가 심각한 것이다.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환자 사망 비율도 비수도권이 훨씬 높다. 서울은 98.4명인 것에 비해 △충남 △전남 △인천 은 120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응급환자가 사망에 이른 비율 또한 강원도 영월, 정선 등의 지역이 서울 동남권의 두 배를 넘었다.

중증 환자 사망률뿐만 아니라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됐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망률’(이하 치료 가능한 사망률)의 지역별 격차도 심각하다. 인구 10만 명 기준으로 서울이 44.6명이 나온 반면 충북은 58.5명 으로 치료 가능한 사망률이 약 31%p 높았 다. 또한 시·군·구별로 차이도 눈에 띈다. 시·군·구별로 경북 영양군이 107.8명으로 서울 강남구의 29.6명보다 약 3.6배 더 높았다. 특히 시·군의 69%는 전국 평균 (50.4명)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다.

엇갈리는 의견 속 멀어지는 해결

의료격차는 계속해서 비수도권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의료 격차 완화를 위해서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신설해 의료서비스를 확충하자는 것이다. 신축이 어렵다면 기존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지역책임의료 기관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병상 수가 부 족한 중진료권에서는 공공병원 신설 및 증축을 하고 병상 수가 충족된 경우에는 기존 의 병원을 지원해 의료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는 국립공공보건 의료대학원 설립과 의과대학 정원 증가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공공 의사 인력 확충을 통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 불평등과 의료 취약지를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피 지역 병원들이 유지·발전 할 수 있는 대안도 요구된다. 지역에 있는 병원들이 상 대적으로 유지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대도시의 병원과 같은 의료 수가를 쓰고 있는 점이다. 의료 수가는 의료서비스 제공 후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을 뜻한다. 상대적으로 환자가 적은 곳에서는 받는 의료 수가가 적기 때문에 병원을 유지 하는 데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 의사들에게 건강보험에 서 더 많은 가산을 주는 등 혜택 마련이 필 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단위 의료서비스 네트워크 형성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학병원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병원 쏠림 현상은 의료인력 수급 문제, 1차 의료기관 붕괴 등 의료시스템의 왜곡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지역에 있는 병원들이 대학병원 과 연계해 중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보내고 경환자는 지역 병원에서 치료하는 등의 체 계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환자마다 요구되는 의료서비스 수준에 맞는 병원을 이용하도록 해 쏠림을 방지하는 것이다.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의견 충돌이 계속되면서 의료격차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 ‘정원’만 놓고 이야기하는 지금, 벌어 질 대로 벌어진 의료격차가 해결되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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