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식당 TV 화면으로 금태섭 전 의원의 징계 소식을 들었다. 동석자는 집권 이후 민주당이 정신을 못 차린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계속해댄다고도 했다.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달랐다. 필자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접근 방법이 정치적이진 않다. 종교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엔 사회학자 뒤르켐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살론>으로 유명한 뒤르켐은 종교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종교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지를 궁금했다. 근대의 이성으로는 종교의 믿음과 숭배를 설명할 수 없었다. 연구 끝에 뒤르켐은 ‘사회 통합’이란 답을 내놓았다. 종교는 의식과 토템을 통해 질서를 만들고, 공동의 유대감을 확인시킨다는 것이다. 숭배해야 할 것과 금기시할 것을 가리고, 같은 행위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연대를 강화한다고도 보았다. 또한 부족사회의 통합 에너지가 종교였다면, 현대사회에는 도덕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 여겼다.

뒤르켐의 이론으로 민주당의 정치를 따라가 보면, ‘촛불’이란 토템을 마주할 수 있다. 민주당에게 촛불은 적폐 청산과 정의로운 세상을 외친 국민과 동의어다. 촛불의 신성한 뜻을 이루기 위해 검찰 개혁, 공수처 설치, 삐라 금지법 하물며 위성정당 창당도 거쳐야 할 의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민주당의 결속은 단단해졌다. 그러나 이 유대는 허구 위에 이뤄진 것이다. 촛불은 결코 토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신도, 절대자도 아니다. 소위 ‘국민의 명령’이라는 초월적이고 일관적인 의지는 사실 허상에 가깝다. 국민은 주권자이고 정치의 주체이다. 촛불로 상징되는 일방적 숭배의 객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주권자를 촛불 속에 가두고 그 뜻을 해석하겠다며 제사장 노릇을 자처한다. 

이런 식의 집단, 부족만의 통합은 정치 갈등만 키운다. 2016년 추운 겨울의 거리에 나서 촛불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손에 든 촛불은 같았지만, 각자의 이상과 바람은 조금씩 달랐다. 모두가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꿨지만, 무엇이 좀 더 나은 사회인가에 대한 의견은 같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도 마찬가지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비판한 교수나 공수처 법안에 기권표를 낸 의원과 같은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믿음을 훼손하는 이들을 찍어 내리기만 한다. 결국 민주당만의 통합을 이뤄내게 된다. 아마 민주당은 끝까지 모를 테다. 연대를 지키기 위한 이기심의 피해는, 차이가 지워진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이쯤에서 적어도 한국에서는 뒤르켐의 예측이 틀렸음을 지적해야겠다. 현대사회에 도덕이 통합의 역할을 할 거란 예측은 틀렸다. 여전히 종교의, 부족의 사회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경청할 수 있는 자세는 저편에 치워졌다. 정치 원리가 믿음으로 작동하게 되면서 다양한 개인들이 숨 쉬는 현대사회의 통합은 멀어지기만 한다. 그저 바라는 건 민주당의 종교 재판이 정치권에서 멈추는 것이다. 더 하다간 국민까지 심판하겠다. 아, 이미 하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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