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 대해 널리 알려진 잘못된 선입견이 있다. ‘미래의 과학기술을 전망한다’는 것이다. SF는 그런 수준을 넘어서 ‘미래의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하는 것이 본령이다. 그리고 과학기술과는 무관하게 재난이나 종말적 격변에 처한 인간의 모습도 다룬다. 즉 SF가 다루는 대상은 과학기술보다는 인간이 핵심인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20년째, 인류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빠른 속도의 사회 변화를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담긴 몇 가지 함의를 고찰해 보자.

 

21세기 세대는 다른 인류다

200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다. 투표권을 행사하고 돈을 벌고 소비를 하고 세금을 낸다. 이들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근미래에는 당연히 사회의 주역이 이들로 대체될 것이다. 이러한 21세기 세대들은 생물학적으로는 20세기 세대들과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문화인류학적으로는 사실상 다른 인간들이라고 봐야 맞다.

첫째로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치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ICT(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일상적으로 향유하며 살아온 인류 역사상 첫 세대다. 20세기 세대들이 전기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면, 21세기 세대에게는 인터넷이 그렇다. 정보에 대한 접근과 이용 수준이 그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둘째, 과학기술 변화에 대한 적응성이 매우 뛰어나다. 20세기의 과학기술은 대부분 수십 년 단위로 변화, 발전했지만 21세기 들어서 그 주기는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예를 들어 유선 전화는 100년도 더 전에 보급됐는데 지금까지 작동 방식이나 사용법에서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그러나 휴대폰은 90년대에 일상화된 뒤로 10년도 안 되는 주기로 계속 업그레이드됐다. 지금의 스마트폰은 휴대용 컴퓨터이며 전화 통화는 기능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과연 20세기의 인간에게 스마트폰을 주면서 몇 마디 말로 그 활용법을 다 설명해 줄 수 있을까?

21세기 세대는 일상의 과학기술을 빠르면 5년 미만의 주기마다 늘 변화하는 분야라고 익숙하게 생각한다. 요컨대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그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유연하고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21세기 세대들이 빚어 갈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철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

20세기 과학기술과 21세기 과학기술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20세기는 ‘성찰 없는 과학기술’의 시대였고, 21세기는 ‘성찰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원자력 △중화학공업 △대중교통 △토목과 건설 등에서 눈부신 변화를 이룩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 △식량 △거주 △이동 문제들이 사실상 해결됐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엄청나서,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넘어 지금은 기후 위기까지 내몰렸다. 세기적 과학기술은 세기적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20세기 세대들이 간과했던 탓에 21세기 이후 세대들에게 숱한 짐을 떠넘긴 꼴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발전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21세기에 들어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전에 여러 면에서 그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진다. △환경영향평가 △예비타당성조사 △실험윤리적 검토 등.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이제는 대응책을 미처 마련하기도 전에 새로운 과학기술이 시장에 선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시스템은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제도의 틀이 미비하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고용시장이 갈수록 요동치리라 전망되지만 기계세(로봇세)나 기본소득 복지 같은 제도는 여전히 입법 이전의 논의 단계이다.

20세기 세대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 태도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인간을 우위에 둔 채 과학기술은 통제 가능한 것이며 단순히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1세기 세대는 다르다. 과학기술과 인간을 따로 떨어진 객체로 보지 않는다. 일찍이 1985년에 도나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에서 설파했듯이 현대 인류 문명은 인간과 과학기술이 합체된 거대한 사이보그인데, 이는 인간이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스스로 철학적 시야가 변화, 확장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21세기 세대가 바로 이런 확장된 시야를 지닌 신인류다.

 

시공간적 시야를 넓혀주는 SF

21세기 중반에 이르러도 여전히 20세기 세대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 다수가 여전히 20세기적 가치관을 고집한다면 세상은 그만큼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세기적 사고방식으로는 21세기 과학기술 사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위기를 초래한 20세기 기성세대에게 ‘어떻게 감히 우리에게 이럴 수 있냐’며 일갈했던 상징적인 장면을 유념하자. 툰베리라는 손가락을 트집 잡을 것이 아니라 그가 가리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20세기 세대가 슬기로운 21세기 생활을 하는 방법은 시공간적 시야의 확장밖에 없다. 그렇게 사회학적, 철학적 상상력을 키우려면 SF를 읽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SF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지닌 문화 콘텐츠인 동시에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스펙트럼처럼 펼쳐 보이는 일종의 안내서다. 흔히 SF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전망을 많이 담는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 숱하게 많은 경고와 통찰을 포착해내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이 20세기 세대가 할 일인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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