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린 플로이드는 숨 막히는 고통을 호소했으나, 가혹행위는 8분 46초간 지속되었고, 그 날 밤 사망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폭력 양상을 띠면서 약탈과 방화를 동반한 폭동과 총격 사건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야간 통행금지령도 발동되었다.

사실 인종차별이 미국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올해 초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테러가 가해진 바 있으며, 유명 스포츠 선수들도 공격적인 팬들의 인종차별에 고초를 겪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대응 방식이다. 사실 누구든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성이라는 장치를 가동하여 본능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공동체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한다. 인간에게 그러한 제어장치를 가동하도록 하는 힘은 교육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류가 함께 어울려 살아온 역사와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과학적 이성을 탐구한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노골적으로 변한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3년 반 동안 그는 말과 행동의 제어장치가 없는 사람처럼 생경한 감정들을 토해 내며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실제로 그의 취임 이후 미국 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소수인종에 대한 폭력이 마치 정당한 행위인 양 자행되기 시작했고, 이에 항의하는 미국 풋볼 리그(NFL) 선수들이 미국 국가 연주 중에 한쪽 무릎을 꿇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수 개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미국인들의 흑인에 대한, 중국 기업에 대한, 남미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증오심을 매개로 정치적 입지를 다져 왔다. 국경에 방벽을 쌓고, 이민 쿼터를 틀어막아 버렸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복지혜택을 모두 없애버렸다. 이번 사태의 대응 방식 역시 시위에 기름을 끼얹는 식이었다. 시위대를 폭도라고 지칭하며 시위대 진압을 위해 군대를 배치하고, 시위대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그를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대 국회가 유난히 막말 논란이 많았던 국회였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과 타국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면, 우리나라의 추종자들은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매개로 정부와 시민단체에 대한 막말을 쏟아 놓았다. 주말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 막말 경시대회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스스로 분열했고 현명한 우리 국민은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제21대 국회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이번 국회에서는 부디 노골적 증오와 막말은 사라지고 품격과 존중, 그리고 그들을 그곳에 있게 해 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 국회방송이 더 이상 19금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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