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자기 결정권’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간통죄 폐지 등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결정권의 확대가 강조되고 있더라도, 성인의 권리 확대에만 그치고 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은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불합리하게 금지당하는 것도 많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지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 한 가지는 청소년 참정권의 확대였다. 우리나라 국민의 선거권 행사 연령은  2005년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아진 후 15년간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이를 만 18세 청소년까지 확대했고, 약 54만 명의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지난 4월 15일 이전에 생일을 맞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투표장에 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는 수년 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2010년대 초반부터 학계 및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18세 선거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입법으로 나아가는 것엔 실패했다. 주된 이유는 청소년의 자기 결정 능력에 대한 의문이었다.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시기며 교사들의 입김에 의해 정치적 의견이 결정될 수 있단 말이었다. 결국 작년까지 OECD 회원국 37개국 중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 보장을 하지 않은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이런 시각은 참정권이 일부 확대된 지금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미성숙한 청소년’이란 꼬리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유효하다. 그 외에도 △보호 필요 △주변인 △질풍노도 등. 청소년이란 단어를 수식하는 말들은 성인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단 것만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청소년의 진로를 부모가 결정한다거나, 휴대전화를 검열하며 교우관계를 통제하는 등의 상황도 발생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법적 규제 역시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일각에서 이런 규제가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 마라, 넌 ‘청소년’이니까

청소년 보호 및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로는 우선 <청소년 보호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률은 청소년 보호를 위한 가정과 사회의 책무를 규정하고, 청소년에게 해로운 것의 기준을 만들어 이들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흔히 듣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 ‘유해업소’ 등이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여러 학자 및 청소년 인권운동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청소년을 향한 규제들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 셧다운제’로 대표되는 금지 일변도의 권위주의적인 규제 정책이다. 셧다운제는 자정 이후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책이다. 2011년 도입 당시부터 큰 논란을 불러왔고, 실제 청소년들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7대 2로 합헌 결정이 났으나, ‘강제적 셧다운제는 전근대적이고 국가주의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발상에 기초한 것으로, 문화에 대한 자율성과 다양성 보장에 반하여 국가가 지나친 간섭과 개입을 하는 것’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권위주의적 금지정책의 위험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계속 제기되지만, 이런 정책들이 여전히 ‘손쉬운 방법’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식품의약안전처는 올해 초 청소년들의 탄산음료 섭취를 줄이기 위해 학교 주변에서 탄산음료 판매 금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치이즈 활동가는 “사회가 자유를 속박하는 형식으로 청소년들의 기강을 잡으려 한다”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일반 노래연습장에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질 때도 미성년자만 대상으로 포함된 것이 그 예시”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을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조재영(청운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 규제 제도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란 논문을 통해 ‘청소년 유해성’이란 개념이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는 <청소년 보호법>에서 ‘청소년 유해성’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실무에선 각 유해성 항목별로 심의 기준을 제공해 사회의 통념에 따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조재영 교수는 이로 인해 청소년 유해성의 해석에 차이가 생겨 관련 심의의 비일관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결국 이런 규제들은 직업 선택권 등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기본권마저 제한하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2년에는 셧다운제로 인해 해외 대회를 준비하던 청소년 프로게이머가 강제로 기권해야 했다. 또한 올해 초에는 청소년 고용금지 업소에 숙박시설이 포함되어, 호텔 실습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학생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미성숙’의 대명사는 청소년?

청소년 인권운동가들은 결국 청소년을 향한 사회의 인식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지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디까지’ 청소년기로 볼지에 대한 명확한 준거는 없어도, 청소년이 ‘어떤지’를 규정하는 특성은 일반화돼 있다. 이른바 ‘미성숙함’으로 대표되는 속성이다. 이런 청소년기의 특성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여러 규제들과 권리 제한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고은채 활동가는 “청소년의 행동을 금지하는 정책은 청소년 시기를 규정하는 관점을 투영하는 것”이라며 “청소년은 학업에 매진해야 한다는 관점,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기일 뿐이라는 관점 등이 배경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규제의 부당함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일부 학자들은 ‘청소년이 정말로 미성숙한지’, ‘<청소년 보호법>의 만 19세라는 연령 기준이 적절한지’ 등에 대해 계속해서 비판해왔다. 청소년학자인 최윤진 전 중앙대 교수는 <청소년 권리 제한 논리의 부당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인간의 발달이 일정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과 ‘청소년 전체를 성인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청소년의 발달 부족을 이유로 권리를 제한하는 논리엔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론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논의는 답보 상태다. 이는 근본적으로 청소년의 사회활동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현실 탓이 크다고 인권운동가들은 지적한다. 고은채 활동가는 “학교에서 교칙으로 학생들의 ‘외부활동’을 규제하는 학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라며 “학생들이 외부활동을 하면 학교의 위신이 손상된다는 논리인데, 이는 타당하지 않다”라고 전했다. 또한 치이즈 활동가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도 학생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청소년은 정당 가입, 선거운동 참여도 못 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보호 필요하지만 인식 바꿔야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확대가 절대선은 아니다. 현대 자유주의의 초석을 놓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성인으로 규정한 나이에 미치지 못하는 어린아이나 젊은이는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금정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정명자 팀장은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확대엔 양면적 측면이 존재한다”라며 “가정폭력 등으로 고통 받는 청소년들이 쉽게 쉼터를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청소년이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마저 사회가 함부로 개입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런 측면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확대가 적극적으로 논의될 필요는 있다. 지금까지 청소년들은 단순히 청소년이란 이유로 권리가 제한됐고, 이들의 목소리나 주장을 사회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그저 사회에 종속된 존재일 뿐이었다. 치이즈 활동가는 “사회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것은 기성세대의 권리를 빼앗는 것처럼 여겨진다”라며 “이 두 가지 권리들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며 사회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확대를 위해선 사회적 인식, 국가 정책 등 고려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청소년 참정권을 일부 확보한 것처럼,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확대도 비슷한 단계를 밟을 수 있다. 금정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의 이소연 팀원은 “만 18세 선거권 도입이 청소년 자기 결정권 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다”라며 “관리와 자율을 섞어가며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이 오용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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