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30여 년 동안 어떤 이유인지 모르고 지원단체의 모금 행사에 동원되는 등 정의연에게 이용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 한결같은 응원을 받아왔던 사람들이기에 논란이 주는 충격은 무척 크다. 언론을 통해 부실 회계에서 비롯된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고 검찰이 본격 수사를 진행 중이라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제까지 여론의 도마에 집중적으로 오른 것은 구멍투성이 부실 회계, 막대한 기부금 손실을 자초한 졸속 운영같이 주로 ‘돈’과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과 기부금들이 공시에서 누락되는 어처구니없는 문제가 드러나는가 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샀다가 수억 원의 손실을 입고 팔게 된 안성 쉼터는 동네 구멍가게보다 못한 주먹구구식 살림을 보여주었다. 번번이 개인 계좌로 모금이 이루어졌고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정의연이 위안부 운동에서 사실상 유일한 대표성을 갖게 되면서 다른 시민단체들은 누리지 못할 기부금과 국고보조금의 풍요를 낳았고, 그런 혜택이 돈 관리에 대한 긴장의 해이를 낳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돈에 그치지 않는다. 이용수 할머니가 말하고자 했던 “지난 30년간의 투쟁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업방식의 오류나 잘못”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성찰이 있어야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선도했던 위안부 인권운동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진보 진영 내에서는 이용수 할머니 발언들의 부적절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모습이다. 진보 진영 내에서는 윤미향 당선자를 지켜주려는 목소리들은 많지만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는 분위기다.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들의 소외됨을 말했지만, 그동안 자신들을 응원했던 사람들로부터는 다시 한번 소외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윤미향 당선자에 대한 최종 평가와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수사를 지켜봐야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들이 갖고 있는 의미는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접한 이용수 할머니의 말들은 일관되었고 피해자를 넘어 운동가로서의 깊은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이 말을 하기까지 1년 동안 고민했다던 얘기며,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10년 동안 같은 얘기를 해왔다는 증언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숙고 속에서 나온 발언들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내 잇속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는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섰다”라는 이용수 할머니의 말은, 돈 문제 의혹뿐만 아니라 위안부 인권운동의 노선이나 사업방식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였던 셈이다.

“수요집회는 무엇을 위해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은 이용수 할머니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얘기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우리 사회의 성역과 금기어를 깬 셈이다. 당신이 피해자였기에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던진 말들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읽으며 위안부 인권운동 30년 역사를 돌아보는 우리 사회의 성찰적 노력도 따랐으면 한다. 정의연이 그동안 추구했던 방향이나 사업들이 최선의 것이었던가는 차제에 깊이 있는 토론을 필요로 하는 문제일 것이다. 

정의연의 활동가들은 위안부 인권운동이 갖는 글로벌 차원의 대의를 말하면서 많은 사업의 성과들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정작 피해자 할머니들이 소외당함을 느끼고 어려운 삶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해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여 그동안 성역 안에서 활동가들 중심의 ‘운동 기득권’ 지키기는 없었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모든 걸 다 떠나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에 소외감을 심어주는 운동은 제 길이 아닌 것 같다. 그분들을 위한다고 시작했던 운동이,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분들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 운동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위안부 인권운동의 앞길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