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비극이 발생했다. 한 경비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 적힌 ‘억울하다’는 내용만이 고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난 14일,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노제(路祭)와 발인식이 치러졌다. 유족들은 눈물로 그를 떠나보냈고, 아파트 주민들은 슬퍼하며 고인을 배웅했다.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에는 주민의 갑질이 있었다. 경비원이었던 고인은 주차 문제 등으로 주민과 다툰 뒤 해당 주민에게 반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 이를 참다못한 그는 결국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됐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다. 비슷한 사건들이 꽤나 오래전부터 지속돼왔기 때문이다. 2014년 입주민에 시달리던 아파트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8년에는 한 아파트 경비원이 술에 취한 입주민에게 폭행당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단 경비원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14년 한 상담사가 자신의 차에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작년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이 넘는 감정노동자들이 여전히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갑질’에 의해 피해를 받는 근로자들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대로 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매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갑’이었다. 근로자들을 ‘을’이라 여기며 일삼는 ‘갑’의 횡포. 갑의 반응에 따라 자신이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들은 참아야만 했다. 숱한 횡포 속에서 ‘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정부는 경비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했다. 경비원들이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않도록 규정을 마련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2018년, 감정노동자의 권리와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 불리는 조항이 신설되기도 했다. 

법안이 만들어진 초기, 그들은 갑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애석하게도 큰 착각이었다. 해당 법은 노동자들의 어떤 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물론 겉으로는 번지르르했다. 각각의 조항들은 모두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준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항이 가지는 강제성은 없었다. 근로자들에게 갑질을 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 받을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는 이가 없으니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호될 리도 없었다. 사실 법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많았으니, 사람들의 인식조차도 바꾸지 못했다. 결국 법이 제정된 후에도 근로자들은 ‘을’로 살아가야만 했다.

지금과 달라지지 않으면 해결될 것은 없다. 숱한 문제들 속에서 지금의 법이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단순히 인식을 개선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고집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을’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의무가 주어져야한다. 그전까지 우리는 더 많은 희생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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