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대학은 서울로 가야한다’, ‘몸이 아프면 수도권에 있는 큰 병원을 가야한다’, ‘지방에서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명성 있는 △대학 △의료시설 △일자리는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있다. 이 때문일까. 우리나라 면적 중 고작 12% 남짓을 차지하는 이곳에는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서울공화국인 셈이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3년부터 문화예술 관람률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관련 활동의 대부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지난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의 제1장 제1조에는 정부의 목적이 잘 드러난다. ‘이 법은 지역문화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지역 간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느덧 법이 제정된 지 6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법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해당 기간 동안 문화 격차는 더 심해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한 <문예연감 2019>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에서 진행된 공연예술은 전체 중 67.13%의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총 66,948회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 횟수가 시행됐다. 2015년과 2019년 <공연예술실태조사>를 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2015년 공연장 별 기획공연 평균 횟수는 수도권의 경우 134회, 비수도권은 93.9회였다. 2019년에는 각각 139.5회, 52.6회의 공연이 진행됐다. 이를 비교하면 지난 4년간 수도권의 공연 횟수는 증가한 반면 비수도권은 크게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에서 예술 하기 힘든 이유 
‘지역이라서’

문화 격차 현상이 심화되는 원인은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 소비를 계급 재생산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문화가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계급 구조의 지표로 기능하며 일련의 문화적 선택들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문화정책논총>에 수록된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문화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부르디외의 주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내 사례를 연구했다. 또한 <상품학연구>에 게재된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문화예술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는 문화예술 교육이 문화예술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두 가지 연구에서는 모두 같은 결론이 도출됐다.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많을수록 문화예술을 소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도 문화예술교육 경험 여부는 차이가 난다. <2018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유아기와 아동기 시절, 정규교육 이외의 문화예술교육 경험 비율은 수도권 22.9%, 비수도권 17%로 나타났다. 청소년기에는 수도권 25.4%, 비수도권은 13.7%의 비율로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냈다. 수도권의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이 85.9%로 비수도권보다 약 8.5%p 높게 나타난 것이다. 

부족한 교육은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지역 시민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만 찾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영화다. 작년 기준 비수도권의 영화 예매율은 전체의 45%다. 같은 기간 동안 문화예술 공연의 예매율이 21%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역이라는 한계도 문화 격차를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예술가 수와 공연 시설의 대다수가 수도권에 집중돼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7년 기준 지역문화실태조사>에서는 시도별 인구 만 명당 평균 등록예술인 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전국 평균이 6.6명인데 반해 서울은 23.3명으로 압도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19 공연예술실태조사>에서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더 많은 공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적인 수치의 격차는 결국 공연 횟수나 공연 종류의 차이로 나타난다. 일반 시민들이 원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예술 기관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은 문화예술 기관에서 진행하는 정책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 문제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데에 요구되는 기준이 대부분 성과 중심이라는 점이다.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집시유랑단 밴드는 “각 지방자치단체나 예술인지원단체에서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성과물의 제작이나 창작에만 지원하고 있다”라며 “지역 예술인들이 꾸준히 양성될 수 있게 토대를 닦으며 싹을 틔울 수 있는 열린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라고 전했다.

 

문화 격차로 생기는 연쇄작용

지역 문화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진 예술가들이 유입돼야 한다. 하지만 문화 격차 현상이 지속될 경우 지역의 신진 예술가는 성장하기 어렵다. 기회가 부족하다는 지역의 구조적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A(해운대구 26) 씨는 “△오디션 종류 △무대 수 △팀의 수 등에 있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가 크다”라고 답했다. 결국 문화예술 전공자들은 어쩔 수 없이 수도권을 택하게 된다. 가수 이진재 씨는 “가수들에게 음원 홍보는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서울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문화 격차는 수도권 인구집중이라는 연쇄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화 수준의 격차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화 격차로 인해 지역을 떠나는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남발전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경상남도 청년 실태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의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5년 이내 경남을 떠나겠다'고 밝힌 사람은 응답자의 33.4%였다. 이유는 일자리(43.5%)가 1위, 문화 수준(28.5%)이 2위였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인구 집중 현상이 가중될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단기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 간 격차를 단기간에 해소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문화 격차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먼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의식 성장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규교육 이외의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지역 간의 격차는 분명하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프랑스의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프랑스의 교육부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불평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중·고등학교 예술의 날’을 시행하고 있다. 모든 학생에게 문화예술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격차를 줄이고자 함이다. 특히 여러 문화예술 전문가들의 협업을 통해 학생들이 △미술 △음악 △무용 등을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족한 문화예술 행사의 관람률은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2018년 기준 공연시설의 재정자립도는 2015년과 비교해 수도권이 62.8%에서 5.3%p 증가한 반면, 비수도권은 40.9%에서 7.3%p가 하락했다. 재정자립도가 부족할수록 단체의 지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지역 문화예술단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 공연의 브랜드화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춘천 축제극장몸짓에서 공연한 연극 <희극인 삼룡이>는 기존에 지역 공연이 전국적으로 흥행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다른 지역의 시민들도 해당 공연을 보기 위해 춘천에 방문할 정도였다. 이 같은 성공에는 춘천시에서 진행하는 지역명품 공연예술 지원사업이 기여했다. 이처럼 지역의 좋은 공연이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해당 단체의 자립도를 키울 수 있다. 문화예술단체의 성장은 더 좋은 공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지역시민들이 지역 공연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도 불러올 수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나서야 원하던 공연을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마저도 컴퓨터 화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수년 간 지속된 문화 격차 현상을 해결하는 것은 분명 어렵다. 그래도 그 필요성은 누구나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을 위해서는 수도권으로 가야 할까? 지금의 상황에서 말하자면, 그래야 한다.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든, 향유하기 위해서든 수도권에서는 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누구나 어디서든 동등한 문화의 가치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이 있다. 지역이라는 이유로 이를 누리지 못한다면 꽤 억울하다. 단기간이 아니더라도 좋다.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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