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함이 또 참사로 연결됐다. 지난달 27일 이천의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우레탄 폼 발포 과정 중에 진행된 용접이 원인이었다. 우레탄이 뿜는 유증기와 전깃불이 만나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작업이 진행된 지하 2층은 생지옥으로 변했다. 예고된 일이었다. 안전보건공단은 10개월에 걸쳐 6번이나 시공사에 안전 경고를 내렸다. 그중 3차례는 화재 경고였다. 그러나 시공사는 유의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조차 없었다. 안전불감증이란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련한 일을 벌인 것이다. 만약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시공사는 숱한 경고들을 예산 절감을 치하하는 훈장 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사람의 목숨이었다.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노동자 38명의 목숨이 일순에 사라졌다. 사과할 자격도 없는 건설회사 사장은 무릎을 꿇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불이었다.

매일같이 공사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같이 같은 말들을 반복한다. 안전수칙 미준수, 불법 개조, 경고 무시, 관리 책임자 처벌, 후진국형 사고, 위험 방지 계획 수립, 긴급 계도기간 설정, 법률 개선 필요 등등. 대형 참사에 꼬리표처럼 따르는 단어들이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다. 주기적으로 비슷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받는데도 고쳐질 생각을 않는다. 2008년에도 정확히 같은 이유로 이천의 냉동 창고에서 40명의 사망자를 낸 화재가 났다. 그때 전문가들이 요구했던 개선 방안이 다시금 등장했다. 12년 전 사고에서 얻은 교훈 따위는 없는 모양이다.

비단 공사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수많은 참사가 똑 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도, 마우나 리조트가 붕괴할 때도, 세월호가 침몰할 때도 똑같은 말이 등장했다. 아무리 관련 법령을 바꾸고, 단속에 나서도 결국에는 사고가 터지고 만다.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법률과 안전수칙만 잘 따르면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모범답안을 따르는 자는 호구로 취급받는다. 편법과 교묘한 방식으로 위법을 감추는 것이 묘수로 둔갑한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단속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단속에 걸려도 적당히 고치는 시늉만 하면 된다. 그렇게 안일한 선택이 끝없이 계속됐다.

그 결과가 여기 있다. 쌓이고 쌓인 부주의가 3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누군가 그 책임을 질 테지만 떠난 이들은 돌아올 수 없다. 유가족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안일함의 대가를 사람의 목숨과 남은 이들의 눈물로 지불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버릇이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무엇을 바꾸고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러나 고쳐질 기미는 없다. 해결책이 있지만 따를 생각이 없으므로 또다시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고, 역시나 같은 말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1994년, 1995년, 2008년, 2016년, 2020년 다음은 언제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되는 광경을 목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해소할 수 없는 갑갑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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