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2월 9일 미국 CBS TV‘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즈(The Beatles)가 출연했다. 단정한 머리에 깔끔한 정장이었다. BTS도 재현한 유명한 그림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모습이다. 비틀즈는 로큰롤 밴드다. 보통 헤드뱅잉이라고 하면 수려하고 풍성한 머릿결과 쎄 보이는 쇠못 달린 가죽 재킷이 필수였다. 그런데 샌님 복장에 영국 양반 말투라 뭔가 아니었다. 결국 쇼가 끝나고 로큰롤 팬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비틀즈가 노린 건 다른 데 있었다.

수트 입은 영국 밴드, 비틀즈

로큰롤(rock‘n’roll)은 세계대전 후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유행한 대중음악으로, 블루스를 기반으로 백인의 컨트리를 혼합한 형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척 베리(Chuck Berry)로, 그는 로큰롤을 통해 범세계적인 영혼의 해방을 선언했다. 로큰롤은 전쟁 이후 가장 잘 나가던 미국이 리드해 나가던 대중문화로서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매체를 넘어 △라이프 스타일 △패션 △사고방식 △언어 등 전 문화, 전 세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후복구에 힘겨운 영국이란 그저 변두리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흥청망청이 문제였다. 최신 유행에 민감하고 놀기 좋아하는 건 10대다. 로큰롤은 미국 베이비붐 세대에게 △술 △담배 △성적 문란에 마약까지 가져다주었다. 청교도주의에 기초한 엄청나게 보수적인 나라 미국 애들이 난리난거다. 기독교인 부모들은 이상한 춤을 추며 광란의 모습을 보이는 척베리와 엘비스(Elvis Presley)를 혐오했다.

비틀즈라고 머리 기를 줄 모르고 찢어진 청바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엔 히피 복장이었다. 그러나 비틀즈를 발탁하고 길러낸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마치 BTS의 방시혁이 하듯 그들을 미장원과 양복점으로 보냈고 잘 포장하여 미국으로 수출했다. 더러운 약쟁이가 흐느적거리는 것과 잘생기고 깔끔한 영국 젊은이가 귀티 나는 말투로 노래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노래 가사도 “뜨거운 밤을 보내자”가 아니라 그저 “손만 잡겠다(I Want to Hold Your Hand)”고 한다.

그렇다. 누구보다 비틀즈에 열광한 건 10대가 아닌 10대의 부모였다. 로큰롤에 반격을 노리던 사회는 새로운 대안을 찾은 것이다. 그 후 비틀즈는 빌보드 10위 안에 6곡을 넣을 정도로 승승장구한다. 전쟁으로 다 찌그러진 영국이 문화적으로 다시 미국의 형님 노릇을 하게 된 건 바로 조지 마틴의 미장원과 양복점 포장에 있었다. 비틀즈 이후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이란 별명으로 수많은 록그룹이 미국에 빨대를 꽂기 시작한다.

 

미국을 뒤흔든
브리티시 인베이젼

영국은 신분사회지만 문화 전반은 평민이 좌우한다. 비틀즈 모두는 평민 출신이라 노래가 건전했다. 그렇다면 상위문화는 고상한가? 부잣집 아들은 어디서나 흥청망청이다. 바로 롤링스톤스가 그들이다. 그들은 건전한 비틀즈만으로 만족하기 힘들던 미국 젊은이들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정장을 입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차별을 주었다. 블루스 리듬과 퇴폐미를 강조하며 백인 블루스(Blue Eyed Blues)의 대표 주자가 된다. 비틀즈가 깔아 놓은 길옆에 샛길을 만든 셈이다.

브릿팝이 휩쓴다고 미국이 손가락이나 빨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미 비대해진 엘비스는 춤 대신 에어로빅을 췄지만 컨트리와 포크 음악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노벨상을 수상한 포크록의 밥 딜런(Bob Dylan)이 대표다. 밥의 음악은 미국뿐 아니라 브릿팝에 미친 영향도 심대했다. 그가 바로 비틀즈에게 환각제인 LSD를 건네준 탬버린맨이었기 때문이다. 브릿팝에 마약과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본격적인 도입은 밥과 함께 시작한다.

핑크플로이드(Pink Floyd), 더 후(The Who), E.L.P 같은 걸출한 프로그래시브 밴드 대부분이 약(Acid)으로 몽롱한 느낌을 전하는 싸이키델릭 음악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던 1966~70년은 비틀즈 후기에 해당한다. 비틀즈는 약까지 먹었는데 계속 손만 잡고 있기는 힘든 일이었나 보다. 특히 1966년 앨범 <Revolver>부터는 음악이 전위적으로 복잡해지면서 가사나 음향도 변한다. 브릿팝에서 우주적이고 몽환적인 음악을 대표하던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조차 비틀즈가 효시다.

그렇다면 야드버즈(Yardbirds)나 크림(Cream)을 아는가? 야드버즈를 거쳐 간 기타리스트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제프 벡(Jeff Beck) 그리고 지미 페이지(Jimmy Page)다. 이런 라인업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Jack Bruce)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3인조 백인 블루스 밴드 크림은 어떤가? 미국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크림의 오프닝 밴드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흑인 블루스를 흡수해 브릿팝의 특징인 몽환적인 느낌의 백인 블루스를 창조해 냈다.

70년대, 로큰롤이 대중화하며 등장한 것이 강렬한 사운드를 내세운 하드록이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이 대표적인 밴드이며, 우리에게 친숙한 퀸(Queen) 역시 하드록에 속한다. 하드록의 최고 밴드는 지미 페이지가 이끌던 레드 제플린이었다. 70년대는 야드버즈를 계승하여 강력한 사운드를  더한 하드록의 시대였다.

제플린이나 딥 퍼플 그리고 퀸이 런던 중심이었다면, 버밍햄(Birmingham)이라는 철강 도시에서 등장한 블랙사바스(Black Sabbath)와 쥬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라는 밴드가 있다. 제플린이 하드록으로 70년대를 장악했다면, 이들은 헤비메탈(heavy metal)이란 더욱더 강렬한 사운드로 80년대를 준비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후예가 바로 미국의 메탈리카라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이외에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대표하는 그램록(Glam rock),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펑크록(Punk rock) 등 여러 장르의 로큰롤이 지역적으로 출현하였다. 70년대 각 밴드의 지지자들이 모여 서로를 헐뜯으며 패싸움을 벌이기도 할 정도였다.

80년대를 휩쓴 뉴웨이브(New Wave), 포크록(folk rock)을 발전시킨 아일랜드 밴드 U2 등 걸출한 밴드가 줄을 이었다. 영향력이 줄기는 했지만 90년대를 대변하는 밴드인 라디오 헤드(Radiohead)나 오아시스(Oasis), 2000년대를 휩쓴 뮤즈(Muse)까지 브릿팝의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브릿팝, 미국이 펴놓은 무대에 영국이 공연하고 돈을 번 모양새다. ‘영국침입’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브릿팝의 성공비결은 음악과 더불어 타깃과 포장에 차별을 두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전통 음악인 블루스를 백인도 즐길 수 있게 변화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발전시킨 데 있다. 

브릿팝은 이렇게 승리하고, 이렇게 세계를 지배하였다. 심지어는 가장 미국적이라는 이글스조차 영국서 다듬고 포장해서 미국에 띄운 밴드라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이호영(서강대 종교학) 강사
이호영(서강대 종교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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